김명용 논설실장

식물인간이란 말이 있다. 심장 정지등의 원인으로 심한 저산소성 뇌손상을 받은 환자를 일컫는다. 산소 호흡기를 통해 호흡은 하지만 혼수상태에 빠져 의식이 전혀 없고 자극에 대한 반응도 거의 없다. 스스로 자세를 바꾸지 못하며 의사 표시도 못한다.

요즘 우리 국회를 식물인간에 빗대는 사람이 많다. 왜 그럴까. 새 정치민주 연합이 공무원 개혁안을 놓고 꼼수를 노려 국회는 개원 됐으나 국회 운영을 보이콧하기 때문이다. 그러기를 벌써 보름째다. 이 때문에 처리해야 할 법안들은 산적해 있으나 언제 통과 될지 기약조차 없다.

이런것은 새정치 민주연합이 새누리당과 공무원 연급 개혁안에 합의 하고도 뜬금없이 국민연금 소득 대체율 50% 인상을 들고 나오면서 꼬였다. 지금은 기초연금 인상까지 들고 나오고 있다. 지나친 정치적 꼼수란 비판이 자연히 일고있다.

공무원 연금 개혁에 대해 이젠 모를 사람이 없다. 그동안 신문 방송등이 매일 보도해 공무원 연금을 현행대로 유지하면 나라 곳간이 비게 된 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그러나 새 정치민주 연합은 지난 2일 새누리당과의 합의문도 깨고 마이웨이를 했다. 국민소득 대체율 50%를 놓고 새 정치 민주 연합은 확정치, 새누리당은 추정치로 하자며 서로 맞서 국회 난항이 계속됐다.

공무원특위 여야 간사는 20일 다시 만나 최대 쟁점인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명기에 대한 절충안을 합의하고 지난 2일 합의한 공무원 연금 개혁안을 오는 28일 본회의 통과를 추진키로 했다. 일단 숨통은 트였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사이 어떤 변화가 있을지 예측할 수 없어 불안하다. 이날 합의하기까지 국회는 식물국회가 돼야 했다.

여야 당직자들이 행여 저산소성 뇌손상을 입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그렇지 않고야 전 국민의 시선을 외면한 채 국회를 마비시킬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 2일 합의한 공무원 연금 개혁안은 곳곳에서 졸속이 발견됐다. 이를 알고도 새누리당이 합의한 것은 시한에 쫓긴 나머지 궁여지책이 아닌가 여겨진다.

새정치 민주 연합과 오랜 줄다리기 끝에 마침내 합의안의 도출이어서 그럴수도 있었을 것 같다. 순간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감격의 함박웃음을 지었다. 김무성 대표는 합의안이 도출되자 국민 대 타협에 의해 합의한 것에 큰 의미가 있다고 강조 했다. 일반국민 누구도 공무원연금 문제의 대 타협에 가담 한적이 없지만 그는 이 말을 거침없이 쏟아 냈다.

새 정치민주 연합이 합의해 준데에 고맙게 여겨 나온 반응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는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국회 선진화법처럼 새정치민주연합의 제안을 덥석 문 것과 다를 바 없다. 지금 국회는 이 선진화 법 족쇄에 묶여 불임 국회가 된지 오래다.

오즉 했으면 박대통령이 답답한 너머지 선진화 법에 묶여 청년 일자리 수십만개가 달려 있는 각종 법안의 통과가 지지부진한데 대해 국회가 ‘과연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고 불만을 털어 놓았겠는가. 현재도 관광진흥법 개정안과 서비스산업 발전 기본법등이 발목 잡혀 있다.

특히 서비스 산업발전기본법은 의료민주화를 전면에 내세운 꼼수라며 새 정치민주연합은 상정조차 거부하고 있다. 지난 2일 합의한 공무원 연금 개혁안도 내용을 보면 졸속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공무원 가입 기간을 종전의 20년에서 10년으로 줄인 것이라든가 연금 수령 개시 연령도 2022년이 돼야 61세로 늦춰지기 시작한 것도 그렇다. 특히 업무중이 아닌데도 장애가 발생할 경우 장애연금의 2분의 1을 지급 하도록 한 비공상 장애 연금도 신설해 놓았다.

이 모두가 국민연금과 형평성을 맞춘다는 명분을 내 세웠으나 이해가 안 된다. 그래서 공무원을 다독이기 위한 꼼수라는 말이 자연히 나오며 ‘물렁한 셀프개혁’비판을 받았던 2009년 개혁 보다도 오히려 부실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대표는 이같은 꼼수로 가득찬 개혁안의 세부 안까지 알고 합의 했는지 묻고 싶다. 아무리 급해도 이런 부실안을 그대로 시행 할 수 없다며 전문가들은 다시 논의를 요구하고 있다.

한 전문가는 이번 공무원 개혁은 국회의 본회의 통과와 상관없이 실패라고 대뜸 말했다. 개혁이란 원래 기득권층의 반발을 부르기 마련이나 이번 개혁안은 그 자체로도 초라하기 그지 없다고 비판했다. 여기에 새정치민주연합은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국민연금 수정안을 끌어 들이고 이에 기초연금 인상 까지 들고 나와 눈살을 더욱 찌푸리게 했다.

해도 너무 했다는 분석이다. 새정치민주 연합의 이런 강공 배경에는 국회 선진화 법을 염두에 둔 야당의 갑질 행위가 다분히 깔려 있다. 이번 공무원 개혁안 실무 기구의 여야 간사로 최종 합의를 이끈 김용하 교수(순천향대 금융보험학과)와 김연명교수(중앙대 사회 복지학)는 개혁한 합의 이후 논란만 증폭되는 상황에 아쉬움을 나타냈다.

김용하 교수는 이번 합의안은 70년간 재정 절감 효과가 333조원에 달한다고 했으며 김연명교수는 ’공무원 연금 기능을 훼손하지 않고 재정 절감을 이뤄낸 안‘이라고 자평을 서슴치 않았다. 그러나 공무원 연금개혁이 국민연금과 기초연금 등 공적 연금으로 확대 되면서 연금 정국은 더욱 꼬여 갔다.

이에 두 교수는 여야 각 진영에 쓴 소리를 했다.

김용하 교수는 ’공무원 연금은 현금 거래, 국민연금은 어음거래 이므로 이것을 등가로 올려놓고 ‘안 된다’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했고 김연명 교수는 이 안이 통과 되지 않으면 앞으로 빈번히 개혁 대상이 될 것이라고 강조 했다.

특히 보건복지부는 새정치 민주 연합이 제시한 기초연금 강화는 후세대에 부담을 더 많이 주는 것이라고 했다. 국민연금 소득 대체율 50%인상도 큰 혹을 붙이는 것인데 기초 연금 인상은 더 큰 혹을 자초하는 것이라고 비판 했다. 보건 복지부는 국민소득 대체율을 50%로 올리면 현행 40%를 유지 할 때 보다 연금 지급액이 2020년에는 440억원이 늘고 2030년에는 1조1980억원, 2040년에는 6조8760억원이 더 늘어 난다고 밝혔다.

새 정치 민주 연합이 주장하는 기초연금 대상자를 소득하위 90%이상으로 확대하고 20만원을 지급할 경우 2020년에는 5조7500억원 2030년에는 17조5700억원 2040년에는 42조2200억원의 추가 재원이 필요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에 대한 산출 근거는 보건복지부의 기초연금 재정 추계 자료를 바탕한 결과다.

사실 기초연금대상자 확대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도 없지 않은 상황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최근 내놓은 경제조사보고서(작년 6월)에 따르면 기초연금 대상자를 줄이고 지급액을 높혀야 취약 노인이 실질적으로 빈곤을 탈출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 보고서는 기초연금 대상자 70%에게 10만~20만원을 지급 하는 것은 효과가 제한적이라고 밝혔다.

경제협력개발기구는 18개월 마다 한국의 경제 사회상을 평가해 제도 개선을 권고해 왔다. 이는 연금 대상자를 줄이더라도 제대로 된 연금을 줘야 자활할 수 있다는 것이어서 주목 된다. 윤석명 한국 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이와 관련해 새 정치민주 연합은 이와 거꾸로 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윤 연구위원은 ‘국민연금은 자신이 보험료를 내면서 재정에 기여 하지만 기초 연금은 세금으로 재원을 조달하기 때문에 고스란히 후세대의 부담이 된다고도 했다.

하지만 새정치 연합은 국회선진화법을 주 무기로 삼으며 이를 최대 정치 쟁점화 하려고 했다. 공무원 연금 개혁안에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인상과 기초 연금 인상안을 들고 나온 것도 그 배경이 아닌지 모른다.

국회선진화법은 2012년 5월 당시 박대통령이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있을때 새정치민주 연합의 제안을 덥석 받아들여 당내 쇄신파인 현 경기지사인 남경필 의원등의 추진으로 통과 됐다. 법안 처리에 있어 60% 이상의 의원 찬성 없이는 법안을 통과할 수 없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제정의 취지는 좋으나 실제 운용에 있어서는 각 당의 이해가 쳠예하게 얽혀 현재는 발목잡는 법안으로 전락 했다.

국회의 현 실상을 잘 아는 박관용 전 국회의장은 최근 한 언론의 기고문에서 우리의 의회 정치가 한계에 부닥친 듯 하다며 면구스럽기 그지없다고 말했다. 과거에도 야당은 투쟁 일변도 여당은 청와대 지시에 순종만하는 일이 없지 않았으나 지금의 국회 선진화법은 국회를 마비시킨다는 점에서 재고 돼야 한다고 지적 햇다.

당리 당략이 내면 깊숙이 자리 잡아 사사건건 발목을 잡는 국회 선진화법은 국회를 식물 국회로 만들고 있다고 비판 했다. 박 전의장에 의하면 민주정치는 만장일치가 아니다. 헌법 제 49조가 정한 과반수 출석과 과반수 찬성이 국회 운영의 기본 원칙이라고 했다. 의원 60%가 동의해야 법이 통과 토록 한 국회선진화법은 이 원칙에 위배 된다고 지적 했다.

현재 이 법 때문에 국회에서 낮잠 자고 있는 법안만도 수백개에 이른다. 국회 선진화법은 다수당의 의미를 퇴색 시킬 정도다. 박 전 의장은 국회 원할을 위해서는 의결의 원칙을 다수결로 할 것인지 여야 합의로 할 것 인지를 헌법차원의 논의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헌법재판소의 심리가 조속히 진행돼야 한다고도 했다. 그래야 불임국회 또는 식물국회라는 오명에서 벗어 날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헌법 개정사를 보면 의장 축소의 역사다. 이젠 정상으로 돌아 와야 한다고 이구동성이다.

국회 선진화 법은 국익에 크게 도움이 안 된다는 사실을 국회의원 스스로도 알 것이다. 하지만 당리 당략이 앞선 나머지 국회 선진화법은 당초의 목적을 크게 훼손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국회 선진화법은 다른 방향으로 수정되거나 개폐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의회 민주주의가 요원해 질 수밖에 없다. 의원들은 박 전의장의 우려에 찬 경고음을 들을 필요가 있다. 오는 28일 처리키로 한 여야의 결정이 이번에는 무위로 끝나지 않을 것을 기대해도 될지 두고 보자. /논설실장 김명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