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학원평생교육시설안전공제회 사무국장

정 환 웅 (시인, 법학박사)

[詩 속의 시인들]

시인 본색

정희성

누가 듣기 좋은 말 한답시고

저런 학 같은 시인하고 살면

사는 게 다 시가 아니겠냐고

이 말 듣고 속이 불편해진 마누라가

그 자리에서 내색은 못하고

집에 돌아와 혼자 구시렁거리는데

학 좋아하네

지가 살아봤냐고

학은 무슨 학, 닭이다,

닭 중에도 오골계(烏骨鷄)!

~~~~~

시인의 자화상

시/정환웅

누가 나에게 상을 주는 것도,

누가 나에게 돈을 주는 것도,

누가 나에게 밥을 주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나는 오늘도 시를 쓴다.

내 시가 시다운 시라는 확신도,

내 시가 다른 이에게 감동을 주리라는 확신도,

내 시가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묘사로 된 시라는

확신도 없다.

하지만

나는 오늘도 시를 쓰고 싶다.

누가 나에게

지나가는 말로라도

'당신의 시가 참 좋더라'는

그 말이 나에게는

그 어떤 상보다도

그 어떤 돈보다도

그 어떤 밥보다도

더 강력한 자극제가 되어

나는 지금도 시를 쓰며 그 말을 기다리고 있다.

누구에게

상을 받을 것도,

돈을 받을 것도,

밥을 받을 것도 아니기에

이 세상에 존재하는

단 한 사람,

나 자신에게 만이라도

훗날 내 시를 스스로 읽을 때마다

'캬아! 감동적이야'라는

말이 나올 수 있는

느낌이 살아있는

시 같은 시를 쓰려고 노력하고 있다.

누가 나에게 상을 주는 것도,

누가 나에게 돈을 주는 것도,

누가 나에게 밥을 주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나는 오늘도

사색하고

고뇌하며

생각을 쥐어짜며 시어와 시름하고 있다.

나는 오늘도

시가 스치는 그 순간을 붙잡으며

메모하고

암송하고

새벽잠 깨워가며

시를 쓰고 있다.

내 증세는

취미보다 더 중증(重症)인

편집광(偏執狂)

바로 그것일까?

내 증세는

물질만능 사회에서

도피광(逃避狂)

바로 그것일까?

남보다 빠르지도,

남보다 끈질기지도,

남보다 모질지도,

남보다 낯 두껍지도 못했다.

속도의 세상에서

최저속도 위반의

교통범칙자

바로 나의 모습이다.

아내는

나의 시 쓰는 행위를

동정심 유발이라고 했다.

시인의 아내는

참

힘들고

고달프고

얼척이 없을 것이다.

주) 얼척이 없다: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황당하다는 뜻의 전라도 사투리

2005.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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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에서 글 쓴다. - 성미정 (1967~)

마땅한 책상이 없어 밥상에서 글 쓴다.

재경이 유치원 보내고

재경이 아빠 가게 가면

밥상을 펴 놓고 글 쓴다.

글 써서 밥 벌고 싶어 밥상에 글 쓴다.

밥은 못 벌어도

반찬값이라도 벌고 싶어

밥상에서 글 쓴다.

재경이 과자값이라도 벌까 싶어

밥상에서 글 쓴다.

밥이라고 쓰면 하얀 김이 나는 밥이 나오고

반찬이라고 쓰면 갈치 콩나물 두부가 쏟아지고

아버지 칠순이라고 쓰면 백만원이 뚝 떨어지는

도깨비 방망이 같은 환상을

하나하나 지워가며 글 쓴다.

글만 쓰고 있어도 배가 부를 경지가 될 때까지

밥상에서 글 쓴다.

밥상이 내게 마땅한 책상이 될 때까지

밥상에서 글 쓴다.

아! 이 빌어먹을 책상물림

ㅡ시집『돌아다보면 문득』(창비,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