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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국교 정상화 50주년 계기로 본 양국의 대차 대조표
기사입력 2015-06-24 오후 8:42:00 | 최종수정 2015-06-24 오후 8:42:20   

김명용 논설실장   

일본의 오랜 경제 침체 시기를 흔히 잃어버린 20년이라고 말한다. 1991년 이후 현재 까지도 잃어버린 20년은 아직 진행형이다. 그 동안 일본은 심각한 내수부진에 수출마저 위축돼 타격이 컸다. 그 사이 여러번의 내각이 바뀌는 정치적 변화도 있었으나 경제를 살리데는 역부족이었다.

장기 집권의 자민당 내각 마저 국민 불신으로 퇴진 해야 했다. 경제 실정에 진저리난 일본 국민들은 자민당 내각도 배척했다. 이어 민주당과 공명당의 내각이 들어 섰으나 이 내각 역시 오래 버티지 못했다. 더구나 경제 침체 속에 동북부지방의 후쿠시마 원전사태까지 터져정치권의 국민 불신은 더 컸다.

자민당의 아베 정권이 새로 등장하는 계기가 됐다. 아베 총리는 경제 난국 해결을 위해 아베 노믹스라는 극약 처방을 내 놓았다. 줄거리는 금융완화와 양적 완화 등 재정정책을 강력하 펴는 내용이다. 이를 추진 하기 위해 세입보다 세출을 늘리고 기업에는 법인세 인하를 약속하고 투자와 고용을 독려 했다.

아베 총리의 재정정책은 미국의 연방준비제도의장이던 벤 버냉키의 양적 완화 정책을 쏙 빼 닮았다. 아베 총리는 무제한 재정 지출을 늘리며 경제 살리기에 안간힘을 다했다. 그 결과 내수가 늘고 수출이 늘면서 성장률이 오르는등 변화 조짐을 보였다.

미국 경제가 침체 됐을때 벤 버냉키는 무려 2조8000억달러에 해당하는 막대한 유동성 자금을 시중에 뿌렸다. 아베 내각도 이를 본받아 인플레 위협을 무릎쓰고 이를 감행 했다. 벤 버냉키의장이 헬리콥터에서 돈을 쏟아 붓듯 그도 그렇게 했다.

버냉키 의장의 헬리콥터 벤이라는 별명도 이래서 얻었다. 미국은 이로 인해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야기된 패닉상태의 경제가 살아나며 안정을 찾아 갔다.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더구나 일본은 앤저로 수출이 늘면서 일본 경제의 숨통이 트이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앤저로 인해 우리나라를 비롯한 많은 나라들은 심각한 수출 악화를 겪어야 했다. 일본의 무제한 유동 자금 살포로 경제는 나아지고 있으나 아베 노믹스의 성공을 말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분석이 많아 앞으로 두고 볼일이다. 아베총리는 이로 인한 국민의 절대 지지속에 재 집권하는 계기도 잡았다.

한일 관계는 이와 관계없이 최근 3년여 크게 냉랭해 미국등 국제 사회도 관심사였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 강행과 일본 천황의 사과 없이는 한국 방문을 할수 없다는 말등이 양국 관계를 더욱 꽁꽁 얼어 붙게 했다.

아베 총리는 이에 야스쿠니 신사 참배 강행으로 맞섰고 내각의 다수 각료들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나라와 중국은 이같은 일본 각료들의 행위에 반박 성명서를 발표하는등 강한 불만을 나타 냈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과거사와 위안부 문제가 주요 쟁점으로 부각돼 양국 관계는 더 소원해 졌다.

이 때문에 박대통령은 중국을 두 차례나 방문 하는등 세계 각국을 순방 하면서도 일본을 제외 시켰다. 무라야마 전 총리와 고노 전 관방장관의 사과 발언을 수정해야 한다는 아베 총리의 말에 정부는 물론 우리 국민들도 크게 분노했다. 한일 관계는 이처럼 최악의 상황까지 치 달았다.

하지만 지난 22일 한일 국교 정상화 50주년을 맞아 양국 정상이 상대국에서 열린 기념 리셉션 참석해 해빙무드로 변했다.

개최 시간 하루 전 까지도 양국 정상의 기념 리셉션의 참석이 불투명해 반쪽만의 기념 리셉션이 될 가능성이 높았으나 아베 총리의 기념식 참석을 결단 하면서 무게가 실린 기념식이 될수 있었다.

여기에는 일본 특사의 박대통령 예방과 윤병세 외교 장관의 일본 방문이 펄친 외교도 주효했으나 양국 정상의 인식 변화 때문이 아닌가 보인다. 양국 정상은 기념 리셉션에서 “새로운 미래를 위한 협력”을 다짐하자고 말했다.

박대통령은 “올해를 한일 양국이 새로운 협력과 공영의 미래를 향해 함께 나아 갈수 있는 전환점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고 아베총리는 “50년간의 우호발전의 역사를 돌이켜 보고 앞으로 50년을 내다보는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자”고 말했다.

그러나 양국 정상의 미래의 관계개선에는 약간의 온도차를 보여 갈등을 극복하기 위한 공감대 형성에 거리가 있음을 보였다. 양국의 외교 실무진들이 한일 정상 회담의 가능성 까지 염두에 두고 접촉하고 있으나 성사되기 까지는 진통도 예상된다.

해결의 키 워드는 홀로코스스에 대한 독일의 통큰 결단 처럼 아베 총리의 통큰 결단이 중요 하다고 본다. 그는 그의 외할아버지와 아버지에 이은 정치가 집안의 면모를 이번에 전 세계에 보일 필요가 있다. 그래야 한일 정상이 마주 앉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

박대통령도 며칠전 해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긍정적인 언급을 했고 아베총리도 어제( 22일) 정상 회담 가능성을 직접 언급해 성사될 가능성은 어느때 보다 높다고 할수 있다. 국민들은 꽁꽁 얼어 붙은 한일관계가 이번에는 꼭 풀렸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

한일 국교 정상화 50주년을 맞아 한일 경제 규모는 그동안 크게 변했다. 한국은 그 사이 6.25한국 전쟁을 치루는등 곤욕을 치뤘으며 일본은 거꾸로 한국 전쟁과 베트남 전쟁의 특수로 인해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다.

한국은 박정희 정부때 한일수교로 이뤄진 일본 청구권 자금을 기반으로 포스코 (포항 제철)건설과 경부고속도로 건설등으로 한강 기적을 이뤄 내면서 현대화의 물결을 타기 시작 했다. 이에 비해 일본은 우리보다 20년 앞서 현대화로 나서 세계 경제의 2위 자리까지 차지하는 경제 부국을 이뤘다.

현재는 중국에 밀려 3위로 처졌으나 2차대전의 패전국 일본의 발전은 세계인을 충분히 놀라게 했다. 일본과 같이 경쟁 했더라면 모르나 한국은 일본보다 20년 늦게 출발해 현 시점에서 일본과 단순 비교 하는 것은 무리다. 삼성전자는 일본의 대표적인 전자 업체인 소니를 크게 앞서 있고 기타 부문에서도 앞서거나 동렬에 있는 것도 많다.

양국의 지난 50년의 경제 변화등의 재 조명은 어떤면에서 의미가 전혀 없지는 않을 것이다. 이유는 양국의 어제와 오늘을 비교하므로써 반면교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일수교가 이뤄진 1965년의 일본의 국내총생산(GDP)은 909억5028만 달러였으며 한국은 30억 1761만 달러에 그쳐 격차는 무려 30배나 됐다.

그로 부터 48년이 지난 2013년에는 한국은 약1조3046억달러로 400배 가량 경제력이 커졌지만 일본의 GDP 40조9196억달러에는 3분의 1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이해 세계은행 자료에 따르면 1인당 GNI(국민소득)은 한국은 2만5920달러였고 일본은 거의 2배인 4만 6330달러였다. 국가 GNI도 한국은 1조30166억달러, 일본은 5조8999억달러로 큰 차이를 보였다.

군사력도 일본이 월등히 앞섰다. 2011년 국방비 지출을 보면 한국은 280억달러였고 일본은 580억달러로 2배 수준이었고 또 한국에는 군사위성이 없었으나 일본에는 2003년에 첫 군사 정찰 위성 발사후 현재 4대를 운영하고 있다.

외교관수도 한국은 2505명이지만 일본은 5787명으로 일본의 절반 수준이며 외교부 예산 역시 2014년 기준 한국은 1조9923억원, 일본은 무려 5조7337억원에 달했다.

해외공관수도 한국은 161곳, 일본은 196곳으로 이것 역시 일본이 많다. 국제기구에 진출한 사무요원수도 한국은 2011년 기준 398명에 불과 했으나 일본은 2배인 765명이나 됐고 공적개발 원조액도 2013년 기준 한국은 17억4364만달러, 일본은 6배인 117만 8611만 달러나 됐다.

2009년 우리나라는 원조 받는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로 바뀌었으나 원조액은 일본이 훨씬 많다. 유네스코분담금도 한국은 279만9476달러이나 일본은 1521만 394달러이고 특히 유엔개발 기여금은 한국 227만달러, 일본 3억8886만 달러로 거의 10배 차이가 난다. 이밖에 저소득 국가에 대한 지원금도 한국은 올해 고작 15억원이었으나 일본은 1170만 달러(약 119억원)로 한국보다 무려 78배나 많다.

대일 수출도 국교정상화가 된 1965년은 4500만달러 약 500억원) 였으나 지난해는 321억8400만달러 (35조 7200억원)로 715배나 껑충 뛰는 성장을 보였다. 하지만 같은 기간 수입 규모는 307배나 증가해 심한 무역 불균형을 이뤘다(수입 1억7500만달러에서 537억6800만달러). 대일 무역적자는 최고 400억달러 턱밑까지 간 일도 있다.

무역적자를 보면 1974년 12억 4000만달러였고 1994년에는 118억6700만달러, 2010년에는 무려 361억2000만달러나 됐다. 이후는 점차 줄어들었으나 여전히 적자폭은 연간 200만달러를 오르 내렸다. 올해는 두 자리수인 75억6300만달러에 그쳤다.

당시 정주영 회장은 일본 미쓰부시 자동차 회사와 마쓰다 자동차와의 협력을 통해 1970년 중반 첫 포니와 브리사를 만들어 냈다. 일본은 여기서도 막대한 이익을 남겼다. 대일 무역적자의 상당부분은 부품소재 부문이다. 부품소재 수입은 전체 대일무역 적자(256억달러)의 87.0%인 222억달러일만치 크다.

대일 무역으로 매년 적자를 내면서도 한국이 무역 흑자 행진을 계속한 것은 대중국 무역에서 흑자를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도 그동안 한국에 의존하던 중간재 생산에 전력 투구하고 있어 안심은 금물이다. 중국의 특수에 만 기대하다가는 후회할 날이 올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경고다.

문학분야에서도 한국은 지금까지 노벨 문학상 수상자는 한명도 배출 못 했다 그러나 일본은 두명이나 배출했다. 가와바타야스나리와 오에 겐자부로다. 가와바야 야스나리는 소설 ‘설국’으로, 오에겐자부로는 ”개인적인 체험“이란 소설로 각각 노벨문학상을 수상 했다.

기타 다른 분야에서도 일본인 노벨상 수상자는 무려 16명이나 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전 김대중 대통령의 평화상이 유일하다. 일본을 따라 잡으려면 무엇보다 차세대 젊은이들의 체계적인 육성이 그 어느때 보다 필요한 싯점이다. /논설 실장 김명용

기사제공 : 수도권지역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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