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거 논설위원

“정치꾼들아 4∼5년은 금방 간다. 폼 잡지 마라”. 사람들의 마음속에 내장된 시계는 저마다의 심리상태에 따라 다른 속도로 간다고 한다. 같은 20대 청년이라도 학창시절을 즐기는 대학생과 제대 날자만 기다리는 사병의 시간 감각은 같을 수 없듯이 말이다.

한 직장 안에서도 까탈스러운 상사 밑에서 마음 고생하는 직원과 해외연수 나가 있는 직원의 달력 넘기는 심사는 매우 다른 것이다. 김대중 정권을 지나 노무현 정권의 5년 임기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난 정권 이명박 당선자 또는 이회창 무소속 후보에게 표를 던진 유권자가 2/3가량이었다고 한다. 이들에게 지난 5년은 여느 십년보다 길게 느껴졌다고 하는데, 노정권 출범 직후부터 “겨우 한 달이 지났는데 반년도 더 된 것 갔다”며 한숨을 내쉬는 사람들이 있었다. 얼마 전에 “노 정권 임기가 1년 정도 남았다”는 글을 쓴 사람의 “왜 한 달을 더 붙이느냐 ”라는 항의성 메일을 보내온 독자도 있었다고 한다.

4년 세월에 지친 건 반노 진영뿐이 아니었다. 노 대통령은 이명박 당선자를 만난 자리에서 “5년이 좀 길게 느껴졌다. 중간에 다시 가다듬고 출발할 수 있는 계기가 없으면 5년은 지루하게 느껴진다”고 했다. 노 대통령은 임기를 1년 이상 남긴 시점부터 지지율이 10%대까지 떨어졌다고 한다. 한두 군데 조사에선 한 자릿수 지지율까지 나왔다는 것이다. 노대통령 스스로 “내 지지율이 낮으니 좋은 정책까지 거부 당 한다”고 탄식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이 정도에 임기 5년(총선은 4년)은 채우기가 버거웠을 만도 했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노 대통령만 겪은 일도 아니었다. 정권 초 90%치솟았던 김영삼 대통령 지지율은 임기 마지막 해 아들 현철 씨가 구속되는 사태를 맞으며 10%선까지 떨어졌다. 당시 김 대통령은 측근들에게 “그만 물러나고 싶다”는 심정을 털어 놓았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김대중 대통령 역시 임기 마지막 해 홍업, 홍걸씨 두 아들을 감옥에 보낸 뒤부터 깊은 침묵 속에 빠져들었다.

정통성 콤풀렉스가 있었던 군사정권들과 달리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정권은 요란한 팡파르를 울리며 등장하곤 했다. 저마다 ‘최초의 문민정부’, ‘50년 만의 정권교체’. ‘1987년 체제의 완성‘ 같은 화려한 슬로건을 내걸었다. 새로운 집권세력은 어김없이 ’대한민국 현대사가 우리로부터 새로 시작 된다‘는 설교를 늘어놓았다. 자신들만이 ’하늘이 내린 세력‘인 양 행세했다. 그런 오만으로부터 국민과 정권의 불화가 시작됐고, 정권 스스로 5년 임기를 감당하지 못하는 불행으로 이어졌다.

대통령 후보자는 책임질 일은 없으면서도 대통령보다 더 힘이 세다. 정권 핵심세력에게 가장 행복한 때가 당선자 시절이다. 신 실세들의 ‘점령군 증후군’이 도지는 것도 이 무렵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이(이명박) 당선자 측근들에게선 아직 이런 증상이 두드러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당선자가 선거 직후부터 ‘몸 낮추기‘를 강조한 덕인지도 모르겠다.

이 당선자는 당선 직후 얼마 전 자신이 다니는 교회에서 당선 인사말을 하면서 “4∽5년이 금방 간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괜히 폼 잡다가 망치지 않도록 하겠다”고 했다고 한다. 정치적 수사에 능하지 못한 편이라서 신무 제목 뽑는 사람들을 늘 고민하게 만드는 이 당선자로서는 다섯 손가락 안에 잡을만한 어록이었다고 한다. 이 당선자가 이왕이면 측근들을 모아 놓고 “4∼5년은 금방 간다. 폼 잡지 말자”고 다짐 시켰으면 좋겠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어느 대통령에게나 어느 국회의원이나 임기가 끝나면‘어김없이 평가받게 되기 마련이다. 정권이 국민을 불편하게 하지 않아야 하기때문에, 그래서 2016년 4월 13일은 중요한 날이 아닐 수 없다. 거창한 목표를 그리다 보면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무리한 스윙이 나오게 마련이다. 정권이 국민을 불편하게 하지 않고 그래서 “4∼5년이 문득 지나갔다”고 느끼게 해준다면 그것만으로도 성공한 정권이다. “4∼5년은 금방 지나간다”는 다짐은 특히 정치인들에게 좋은 출발점이 된다는 것을 깊이 되새기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