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송시대 서긍(徐兢)의 고려도경(高麗圖經) 이래 청말 마건충(馬建忠)의 동행삼록(東行三錄)과 숭례(崇禮)의 봉사조선일기(奉使朝鮮日記)에 이르기까지 고려와 조선을 방문한 역대 중국 사신이 남긴 한반도 기행문 18종이 완역됐다.

국제교류사 전공인 서강대 사학과 김한규(62) 교수는 2003년 중국 베지징도서관출판사가 내놓은 역대 중국의 한반도 사행록(使行錄) 총서인 '중조관계사료총간(中朝關係史料叢刊): 사조선록(使朝鮮錄)'을 모두 번역해 최근 출간했다.

이번 번역은 한국연구재단이 지원하는 '학술명저번역총서' 중 '동양편'에 포함돼 선보였다.

번역 저본인 '사조선록'은 중국학자 은몽하(殷夢霞)와 우호(于浩) 두 사람이 편집했다.

이에는 고려나 조선을 방문한 역대 중국 사신 12명이 오간 여정이나 견문한 내용 등을 정리해 남긴 여행기 혹은 공식보고서 18종이 수록됐다.

여기에는 정식 명칭이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인 고려도경 두 종류를 비롯해 조선 세종 시대에 다녀간 예겸(倪謙)이 남긴 세 종류의 사행록 '봉사조선창화집'(奉使朝鮮唱和集)과 '조선기사'(朝鮮紀事)와 '요해편'(遼海編)이 있다.

예겸보다 10년 뒤인 세조 6년(1460) 조선을 찾은 명나라 장녕(張寧)의 '보안당정정방주선생봉사록'(寶顔堂訂正方洲先生奉事錄), 성종 19년(1488) 명 효종의 즉위를 알리고자 방문한 동월(董越)이 남긴 유명한 '조선부'(朝鮮賦)와 그 자매편인 '조선잡지'(朝鮮雜志), 중종 31년(1536)의 사신 공용경의 '사조선록'(使朝鮮錄)도 들어 있다.

임진왜란 이후 명나라 사행록으로는 주지번(朱之蕃)의 '봉사조선고'(奉使朝鮮稿)와 강왈광(姜曰廣)의 '유헌기사'(유<車+酋>軒記事)가 포함됐다. 이후 청나라 사신의 기록으로는 아극돈(阿克敦)의 '동유집'(東游集)과 백준(柏준<초두 밑에 俊>)의 '봉사조선역정일기'(奉使朝鮮驛程日記), 괴령(魁齡)의 '동사기사시략'(東使紀事詩略) 등이 있다.

김한규 교수는 "이들 중 고려도경과 조선부를 제외한 16종이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번역됐다"면서 "번역본 전 5권에 걸쳐 1만2천529개에 달하는 주석을 보탬으로써 이해를 높이고자 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들 사행록을 통해 역대 중국 왕조와 한반도 왕조의 지속적인 책봉-조공 관계를 엿볼 수 있고, 이들 간 외교 양상에서 '창화외교'(唱和外交)라는 독특한 양식을 발견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창화란 한족에서 시를 지어 노래하면 다른 쪽에서 그 운에 맞추어 대응 시를 짓는 일을 말한다.

김 교수에 따르면 예겸 이후에 중국과 조선 간 외교사절 행사에서 이런 창화시 짓기가 유행으로 자리잡았다.

이번 번역본 토대가 된 '사조선록'은 역대 중국 사신의 기행문을 하나로 모았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의미가 있지만, 기획 의도는 이른바 동북공정과 맞물려 불순하기 짝이 없다.

총서 첫머리에 유위(劉爲)라는 사람이 붙인 서론(序論)을 보면 조선 민족의 형성 시작을 중국인이 대거 이주한 시점으로 잡는가 하면, 고구려를 "일개 지방 민족정권"으로 간주하고, 김부식이 설정한 삼국이라는 관념도 고구려에서 뿌리를 찾고자 한 고려왕조에서 조작한 것으로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