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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矛盾)의 성립
― 경제 민주화 논쟁에 붙여 ―
기사입력 2012-11-13 오전 10:04:00 | 최종수정 2013-11-25 오전 10:04:58   

 

 


주필
이 태 건(인하대 명예교수)

 무기를 파는 장사꾼이 창 한 개를 들고 외친다. “이 창은 세상 어떤 방패라도 다 뚫을 수 있는 최고의 창입니다. 사 가시오.” 한 사람이 그걸 사 들고 자리를 뜬다. 그가 몇 걸음 떼어놓기도 전에 그 무기상은 새로 방패 하나를 꺼내 들고 또 외친다. “이 방패는 이 세상 어떤 창으로도 뚫을 수 없는 최고의 방패요. 사 가시오.”

중국의 고전 『한비자(韓非子)』에 나오는 <모순(矛盾)의 고사>이다.

여기서 무기상이 한 말은 논리 상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말이나 경우를 가리켜 <창(矛)과 방패(盾)>, 즉 모순이라 한다.

본래 이 고사는 저자가 권세 쥔 자(權者)와 슬기로운 자(賢者) 사이의 관계를 빚대어 한

이야기이다. 권자는 권세를 쥐고 있기 때문에 다스릴 수 없는 바가 없는 상태를 지향한다.

하지만, 현자는 스스로가 슬기로워 마땅히 해야 할 바와 해서는 안 될 바를 구별하여 알고 있으므로 다른 아무의 다스림도 받을 필요가 없으며, 따라서 누구에게도 다스림 받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 고사에 대하여 사색을 이어오던 중, “그 창과 그 방패를 한 무사가 들어도 모순인가?”라는 의문에 이르게 되었다. 그리고 “제 창으로 제 방패를 찌를 무사는 없는 것이니, 이 경우 상황은 모순이 아니라 오히려 최고의 무장이 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에 다다르게 되었다. 우리는 이런 상황을 ‘모순의 성립’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요즈음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각 예비후보 진영들 사이에 정책 겨루기가 점입가경이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경제 민주화’ 문제가 중요한 쟁점으로 눈길을 끈다.

우리가 ‘민주화’를 논할 때 대개 그 이념적 기본 지표는 ‘자유’와 ‘평등’으로 모아진다.

‘자유’에서 민주화의 이념적 지표를 찾는 이들은 국가 권력이나 사회적(종교적) 권위에 의한 억압으로부터의 시민 해방에 역점을 둔다. 사람들은 본래 이성적(理性的) 존재로 태어났기 때문에 각 개인이 알아서 살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사회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경제 민주화의 기본 방향 역시 시장의 자율성 확립과 시민 개개인의 자유로운 경제 활동 보장에서 찾는다. 그래야만 경제가 활성화되고 생산성이 높아져 사회 전체적으로 ‘파이’(π)가 커지게 되며, 결국 시민 개개인에게 주어지는 분배의 몫도 함께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설사 경제활동에 대한 제한이 필요하다 하더라도, 권력이나 권위에 의한 자의적(恣意的)인 제한보다는 법에 의한 제도적(制度的) 제한이 더 바람직하다고 역설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평등’에서 민주화의 이념적 지표를 찾는 이들은 자유가 빚어낼 여러 가지 불평등과 불균형을 우려한다. 이들은 분배의 균형을 이루고 재벌 및 대기업의 각종 횡포와 전횡을 억지함으로써 중소기업과 소시민의 억울함을 막는 데 주력할 것을 내세운다. 이들은 특히 중산층 이하의 시민들에게 부여되는 각양의 사회복지 문제를 강조하면서, 그 재원(財源)은 상위 소득층으로부터 거두어들이는 세금을 늘여 충당하자고 주장한다.

선거로 정치지도자를 뽑는 것이 제도화된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치인들이 여야를 막론하고 복지문제에 대하여 경쟁적으로 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일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중산층 이하의 시민들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에, 실현 가능성을 불문하고 우선 그들의 입맛에 맞는 정책안을 제시하여 더 많은 표를 끌어모으려 골몰하는 몰골이니까 말이다.

그러나 민주정치의 이념 지표에 대해 깊이 연구해 온 학자나 사상가들은 대부분 민주화의 이념적 지표는 자유와 평등의 조화와 균형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의론(Theory of Justice)>의 저자 롤스(John Rawls)도 그 한 예이다. 그는 민주화의 이념적 지표를 정의(正義)에서 찾으면서, 그 기초를 ‘자유에 바탕을 둔 평등’에 둔다. 이는 “그 창과 방패를 한 무사가 동시에 드는 것이 최고의 무장”이라는 ‘모순의 성립’ 원리 적용의 대표적인 전형이라 하겠다.

같은 맥락에서 볼 때,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 사이의 대립과 갈등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정치과학자(political scientist)들 가운데는 민주화의 선행 요건으로 경제성장을 내세우는 이들이 많다. 이들의 조사-분석에 의하면, 대체로 1인당 국민소득이 1만 불을 넘으면 민주화 추진이 가능하고, 2만 불을 넘으면 민주화는 성공하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산업화 세력이 민주화를 늦추면서까지 강행했던 경제성장의 성과는 오늘날 민주화를 위한 물질적 기초로서 한국사회의 성공적 민주화의 담보가 되고 있지 않은가. 사실 5-16 이후 이어진 군사정권들 아래서 한국경제는 산업화에 초점을 맞추고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룬 것이 사실이다. ‘문민정부’가 세워지면서 이른바 민주화 세력에게 정치적 주도권이 넘어 온 이래 한국사회는 정치-사회-문화 분야의 민주화에 있어서도 세계가 인정하는 눈부신 성과들을 거두어 오고 있다.

이제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은 서로가 아웅다웅 다투어야 할 적이 아니라 함께 협력해 나가야 할 파트너이다.

‘경제 민주화’ 조항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헌법 제119조는 두 개의 조항으로 되어 있다. 제1항은 “대한민국의 경제 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 상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이다. 이는 경제 민주화의 이념적 지표 가운데 하나인 ‘자유’와 주로 연관되는 조항이다. 제2항은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과 적정한 소득 분배, 시장 지배와 경제력 남용 방지, 경제 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 민주화를 위해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이다. 이는 주로 ‘평등’을 염두에 둔 국가의 간여와 관련되는 조항이다.

문제의 핵심은 이 두 조항이 어느 한 쪽만이 강조되고 다른 한 쪽은 소홀히 해도 되는 양자택일(兩者擇一)의 선지(選枝)가 아니라는 데에 있다. 이 두 조항 역시 변증법적으로 상호지양(相互止揚) 되어야 하는 ‘창과 방패(矛盾)’ 아니겠는가!

경제 민주화를 추진해 나가는 데 있어서 정치적인 이유로 괜히 갈등을 확대 재생산 시키려 드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다. 이는 큰 안목으로 보아 나라와 겨레를 위하는 참다운 길이 결코 아님을 정치 지도자들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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