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거논설위원
요즘 새로운 시대를 꿈꾸는 사람들이나 신문․방송․시민단체들이 「허리띠를 졸라매자」고 종종 부르짖는다. 가정에 수입과 지출이 균형을 잃고 있기 때문이다. 이 허리띠란 말은 대단히 상징성이 큰 것이다. 지금은 거의 사라졌지만 과거 회사직원들이 회식을 할 때나 친척․동네사람들이 모여 음식을 나눌 때 「허리띠를 풀고 실컷 먹자」라는 말을 많이 했다.

지금은 그런 말을 했다가는 많이 먹는 것 보다 다이어트가 더 중요하기에 여간 촌스럽게 들리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세월은 변했다. 그러나 가난이 숙명으로, 너무나 오랜 기간 먹는 것이 하늘처럼 엄숙한 그 무엇이었기에 허리띠를 매거나 풀거나 그것은 아직도 우리의 컴플렉스로 대뇌 깊숙이 박혀 있어 이제 다시 등장했다.

「경제 식민지」또는 「경제 신탁통치」란 말이 나올 정도로 우리 형편이 절박해졌기에 허리띠가 리바이벌한 것은 이해할만하다. 그러나 분명히 「허리띠를 졸라매자」라는 말은 초점이 빗나간 구호이며 현실적으로 크게 틀리지는 않았더라도 적절한 표현은 아니다.

첫째 허리띠를 졸라매자는 무차별적 호소는 왜곡된 현실을 다시 왜곡시킬 수 있는 것이다. 지금 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의 다수를 점하는 서민층이나 중․하위 층의 절약이 아니고 고소득층의 사치․낭비를 철저히 봉쇄하는 것이다. 돈 많은 사람들의 사치․낭비가 外貨소모의 주범이기 때문이다. 보통의 중간계층이나 서민은 고소득층의 과소비에 영향을 받아 다소 분수에 넘치는 소비를 했을망정 책임의 주범은 아니고 기껏해야 주변의 동조자였을 뿐이다.

앞서 「현실왜곡」이란 말을 했지만 우리는 왜곡의 진면목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우리 사회의 고소득은 거의 지하경제의 不當한 이전소득이며 낭비는 쉽게 번데서오는 반사작용의 성격이 농후한 것이다. 예컨대 한 달 5백만 원이라는 많은 월급을 받는다 하자. 그래도 맘대로 쓸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5백만 원이래야 세금과 기타 공제금을 떼면 4백만 원 안팎의 실질소득이 된다. 이 가운데 2백만 원은 생활비로 쓰고 50만원은 저축, 나머지 1백 50여만 원을 쓴다면 결코 여유 있게 쓸 수 있는 게 아니다. 5백만 원 월급생활자이면 조직의 상층부 사람으로 경․조사 비용만 몇십만 원이 나가고 부하들과 일주일에 두어 번 식사해도 한달에 1백여만 원은 쉽게 없어진다. 어떻게 몇 십만 원짜리 술좌석을 책임지고 어떻게 해외에 나가서 몇 천불씩 쇼핑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낭비는 마구 쓰는 회사 판공비, 회사 돈을 변칙 처리해 빼내는 오너들, 돈이거나 물건이거나 거의 죄의식조차 없이 받아쓰는 공무원에게서 나온다. 낭비는 또 돈 잘 버는 자영업자나 전문자유직 종사자에게 심하다. 이들은 대부분이 소득세는 1년에 몇 십만 원 내면서 보통 봉급생활자의 몇 배 또는 십 여배의 소득을 올리는 게 상례이다. 그럼에도 세무공무원과 결탁, 또는 교묘한 은폐로 소득을 줄여 신고하고 또 그것이 통하고 있다. 궁금하면 자기가 사는 동네의 큰 갈비집 주인이 어떻게 살고 세금을 얼마나 내는지 확인해 보라.

두 번째로 「허리띠 졸라매자」는 구호의 부적절성은 外貨낭비와 국내소비의 경제적 효과를 혼동시킬 우려가 크다는데 있다. 우리가 문자 그대로 먹는 것 입는 것 같은 기초소비마저 위축시킨다면 우리 경제는 긴축 아니라 냉동상태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 정말 모두 굶어죽고 얼어 죽는다. 우리경제는 5%정도 성장해야 젊은 신규노동력이 흡수된다고 하였다.
 IMF 요구대로 2.5% 안팎으로 성장률을 철저히 억제하고 대부분 기업이 감량 경영해야할 판에 모두가 공포심에 휩싸여 生存소비만 있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 경제는 몸살치료를 하려다 항암제가 마구 투여된 환자처럼 빈사상태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음식점엔 의자만 덩그러니 남고 옷가게들은 셔터를 닫고 하루의 노고를 풀어주는 소줏집엔 여인의 한숨만 처량한 장면을 상상해 보자. 그런 최악의 상태가 과도한 소비위축과 이에 따른 不安심리로 파생될 수도 있는 것이다.

문제의 초점은 부패와 뇌물, 소득 속이기 등 온갖 형태의 지하경제를 해맑은 햇볕 속으로 나오게 해 제독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투자수요 아닌 소비측면에서의 외화낭비는 자연히 해소된다.

또한 과소비의 나쁜 풍조는 국민 전체의 해이된 정신을 탓하기에 앞서 다수 국민을 「마구 써도 괜찮은 것」으로 착각하게 만든 정부의 오도로 연유한 것이다. 무역 또는 무역외수지의 건전성이 대외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인데 자본거래에 따른 외화유입으로 일시 달러가 넘친다고 우쭐하며 여행경비를 한사람 당 1만 달러까지 허용하는 등 사회전체의 분위기를 방만하게 만든 게 지난정부였다. 어쨌든 곧 선거가 또 시작되고 분위기도 바뀔 것이다.

「허리띠 졸라매자」는 구호가 액면대로 해석돼 자칫 정반대방향의 극단적 분위기로 흘러서는 안 된다. 그러면 또 한 번 우리는 실수하는 꼴이 될 수 있다. 넘치는 것, 너무 모자라는 것, 현시점에선 모두 적절치 않다. 허리띠까지야 무방하니 먹고 싶은 만큼 먹고 다만 과도한 소비나 삼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