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거 논설위원

열자(列子)란 사람이 평화로운 시대에 살았더라면 아마도 종북(終北)이란 나라를 상상하여 만들어 놓지 않았을는지 모른다. 그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험한 세상에 살았던 탓으로 그러한 나라를 만들어 놓고 참담한 현실을 잊어 보려고 소망의 나라를 만들었을 것이다.

  열자가 만들어 놓은 종북(終北)이란 나라는 바로 이런 것이었다. 땅은 둥글고 주변에는 높은 산줄기가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고 둥근 분지가 쟁반 같다. 그 한가운데에 호령(壺靈)이란 산이 높이 서 있다. 호령의 정상에는 자혈(磁穴)이란 샘이 있다. 그 샘에서 단물이 항상 사방으로 흘러내린다. 자혈의 물을 신분(神糞)이라고 한다. 호령산을 뱅 돌아 신분의 강물이 원을 그리며 흐른다. 사람들은 그 강 주변에 모여 산다. 배가 고프면 신분을 마시면 된다. 굶주림이란 없다. 취하고 싶으면 좀 더 마시면 된다.

  사는 일이랑 신분을 마시는 정도이고, 항상 출을 추고 노래를 부르기만 하면 된다. 사내들은 논밭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 항상 봄이고, 날씨는 맑고 따뜻해 아낙들은 힘든 길쌈을 하지 않아도 된다. 아무도 옷이란 것을 걸칠 필요가 없는 까닭이다.

  나쁜 벌레라곤 없어서 병이란 것도 없다. 남녀나 노소(老少)를 가리지 않고 언제나 어울려 논다. 그러다가 사랑을 나누고 싶으면 누구하고나 눈이 맞아 서로 정을 통한다. 그러니 인륜(人倫)이란 것도 따로 없다. 그렇게 백년을 살다가 병치레 없이 죽어 가면 된다. 그러므로 항상 종북에는 사람의 수가 늘지도 않고 줄지도 않는다.

  열자의 종북이란 나라는 낙원 같은 곳임에 틀림없다. 그곳에는 눈물도 아픔도 절망이나 좌절도 없는 까닭이다. 항상 웃음만 있고 춤추고 노래하는 일이 삶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나라를 만들어 넣은 다음 왜 열자는 이 세상을 종북처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았을까? 사람이 사는 이 세상은 그렇게 될 수 없음을 열자가 알고 그랬는지도 모른다.

  사람의 성질머리를 따지고 보면 그런 종북에서는 며칠간은 좋다고 살지 몰라도 영영 살라면 못 살 것이다. 사람은 줄곧 행복해도 아파한다. 사람의 삶에는 항상 변화가 바람처럼불어야 하는 까닭이요 사람은 웃음과 눈물이 함께 해야 살맛이 난다고 변덕을 부리는 까닭이다. 종북에는 그러한 바람이 없다.

  행복만 있어야 된다고 고집한다면 아예 행복은 없어져 버린다. 불헹ㅇ; 있어야 행복이 있게 되는 법이다. 이는 절망이 있으므로 희망이 있는 것과 같은 진실이다. 항상 우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천치일 것이고 항상 웃는 사람이 있다면 그 또한 바보일 뿐이다.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면서 사람은 삶의 변화를 마주하면 살아간다.

  삶을 항해라고 하지 않는가! 항상 고요한 바다는 없다. 거칠 때도 있고 잔잔할 때도 있다. 그래야 항해는 가능하다. 잔잔하기만 하면 가야할 배는 멈추고 항상 거칠기만 하면 떠야할 배는 부서진다. 산다는 일도 그렇게 곡절을 겪으면서 나아간다. 삶의 뜻이란 바로 이러한 맞물림에서 이루어져 솟아나는 맛일 것이다. 인간의 역사에 언제 태평성대가 있었던가. 세상은 한 번도 조용한 적이 없었다.

  목숨에는 모두 명(命)이 걸린 탓으로 영원하지 못하다. 영원하지 못하므로 삶에 대한 욕심이 붙게 된다. 욕심은 갖고 싶은 것 누리고 싶은 것을 한사코 고집한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신기루 같고 무지개 같아 있으면서도 손에 잡히지 않는 것들이다.

  사람들이 꿈꾸는 낙원이란 따지고 보면 욕심이 끄집어낸 속셈이기 쉽다. 그런 속셈을 믿고 욕심의 골목을 낙원으로 여기며 이민 가려고 용쓸 것은 없다. 그런 낙원은 지옥의 가면인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