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용 논설위원

김기덕 감독이 최근 내놓은 영화 ‘뫼비우스’에 대해 영상물 등급 위원회(영등위)가 두 차례나 제한 상영가 결정을 내렸다. 제한 상영가 결정을 받으면 일반 극장에서는 상영을 못 한다. 이 영화를 상영 하려면 제한상영가 허가가 난 극장에서만 가능하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이런 극장이 없다. 2004년 대구에 레드시네마와 동성아트홀이 제한 상영관을 표방하고 문을 열었을 뿐이다.

김 감독은 2012년 영화 ‘피에타’로 베네치아 국제 영화제에서 황금 사자상을 수상한 국제적 으로 알려진 토종 영화인이다. 그러나 그의 회심작인 영화 ‘뫼비우스’가 영등위로 부터 두 차례나 제한 상영가 결정을 받아 이 영화가 세상에 선 보일지 의문이다. 김 감독은 지난주 이에 크게 반발하면서 최후 수단의 강수를 들고 나왔다.

이번 주중에 기자와 평론가, 문화부 관계자, 관객들을 초청해 시사회를 가진 뒤 즉석에서 ‘뫼비우스’에 대한 찬반 투표를 실시해 30%이상의 반대표가 나오면 재심 결과에 관계 없이 개봉을 포기 하겠다는 것이다. 시사회라면 흔히 참석자들에게 ‘이런 영화를 내놓을 예정이니 한번 보고 홍보해 주시십시오’ 하는 부탁성 자리이다.

그래서 이 자리에는 출연 배우가 모두 출동해 영화 뒷 얘기를 들려 주거나 참석자들과 돈독한 친교를 맺기도 한다. 그런데 이번 시사회는 그런 의미의 시사회가 아니고 폐업식 같은 성격 같아 사뭇 분위기가 심각하다.

마치 개업을 준비 중인 식당 주인이 ‘음식 맛을 보고 손님들이 맛이 없다’고 한다면 당장 식당 문을 닫겠다는 것과 같다. 지금까지 새 영화의 개봉전 시사회는 수 없이 봐 왔으나 이런 일은 없었다. 영화 시사회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이는 김기덕 감독이기에 가능 한지 모른다. 너무나 파격적인 그의 돌직구에 모두들 의아할 뿐이다.

김 감독은 마지막으로 한번 더 영등위에 심의를 신청 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영등위가 문제 삼은 영화 장면중 12컷 약50초를 모두 잘라내 직계 성관계를 볼 장면은 없을것”이라며 심의 통과에 한가닥 기대를 걸었다.

김 감독은 잇단 두 번의 제한 상영가 결정에 마음이 몹시 쓰린듯 아쉬움을 떨치지 못했다. ‘뫼비우스’가 청소년 관람 불가인데도 영등위가 15세의 청소년이 볼까봐 제한 상영가로 결정한 것은 등급 결정에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이해 못할 이유로 ‘뫼비우스’를 사장 시키려는 건 있을 수 없다고도 했다.

김 감독은 ‘밤새도록 살을 자르듯 필름을 잘라 재심을 준비 했었으나 영등위는 제한 상영가로 결정을 했다고 말했다. ‘뫼비우스’는 부녀간의 근친상간을 다루는 줄거리로 전개되고 있다.

대상은 다르나 희랍 신화에 나오는 '오이디푸스‘ 내용과 흡사하다. 오이디푸스는 테베 왕이 되자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와 동침하는 불륜을 저지른다. 도시에 역병이 크게 번지자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불륜이 재앙의 근원임을 알고 죄책감으로 바늘로 자기 눈을 찔러 장님이 된 후 도시를 떠난다.

영등위가 ’뫼비우스‘를 제한 상영가 결정을 내린 것도 부녀간의 근친 상간인 반사회적, 반윤리적인 장면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근친상간을 옹호 하거나 동의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그러나 김 감독이 이번 시사회에서 30% 찬반 투표라는   강수를 들고 나온 것은 다른데 있지 않다. ’뫼비우스‘의 등급을 영등위에 맡기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객관적인 판단을 받아 보자는 뜻에서 기자와 평론가 문화부 관계자 관객들을 초청했다고 밝혔다. 김 감독도 “제가 지금까지 만든 18편의 영화보다 ’뫼비우스‘가 얼마나 더 음란하고 타락 했는지를 객관적으로 묻고 싶다”고 했다.

문제는 영등위의 등급 판정 기준에 일관성이 없다는 점이다. 최근 상영된 ’명왕성‘은 이를 잘 대변해 주고 있다. ’명왕성‘은 우리나라의 입시 지옥과 치열한 경쟁으로 비극을 맞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그리면서 동시에 상위 1%만을 위한우리 교육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영화다.

이 때문에 칸국제 영화제와 베르린 영화제에서 카날 플러스상과 특별 언급상을 각각 수상 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의 영등위는 이 영화가 청소년 학생들의 참혹한 현실을 충격적으로 보여 준다는 이유로 한때 청소년 관람 불가 결정을 내렸다. 영등위의 이 조치는 각계의 항의가 빗발치자 곧바로 15세 이상 관람가로 수정 했다.

마땅히 청소년들이 봐야 할 영화로 세계 영화제가 주목한 이 영화를 우리 영등위는 왜 그렇게 했는지 모른다. 가치관이 달라서 인가. 10년전의 영화 ’올드보이‘의 심의 통과도 현재의 영등위라면 어림 없었을 것이다. 이 영화도 부녀간의 근친 상간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 영화는 칸 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았고 지금까지 동원된 관객수도 326만 9000명에 이른다.

당시 영등위가 이 영화를 심의에서 통과 시킨 것은 ’영화‘라고 판단 했기 때문이 아닌지 모른다. 이처럼 영등위의 등급 기준이 들쭉 날쭉해 영화 제작자들은 골탕을 먹기 일쑤다. 중요 한것은 영화 평가는 영등위가 아니고 관객이고 영화 소비자란점이다.

소비자가 관람하기도 전에 가위질하는 것은 과거 군사 정부 에서나 있었던 일이다. 전체 120분을 상영하는 영화중에 1~2분 정도가 문제라고 해 가위질 하는 행태는 폭거나 다름 없다. 수백억원을 들여 제작한 영화를 영등위 관련 몇몇이 영화를 평가 하는 것도 지나치다. 물론 제작자들도 관객수 동원에 혈안된 나머지 자나친 선정 위주의 태도는 마땅히 지양해야 한다.
 
영화인은 사회의 주목을 받는 공인이다. 영화 내용의 일부를 문제 삼고 성급하게 등급 결정하는 것도 배제할 일이다. 영등위는 결정에 앞서 제한된 관객에게 미리 관람 시킨뒤 이들로 부터 평가를 받는 열린 심의 방법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영등위의 등급기준이 들쭉 날쭉 하다면 불신만 키울 뿐 영화 산업 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영등위의 확실한 영화 등급 기준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다.

논설 위원 김명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