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용 논설위원.

 인간의 성공 여부는 처세에 따라 판가름 난다고 흔히 말한다. 그럼 처세는 무엇인가. 사전적 정의는 “남들과 사귀면서 살아가는 일”이다. 처세술은 처세하는 방법과 수단을 말 한다.처세를 잘하고 못함에 따라 인생에는 엄청난 변화를 가져온다. 잘 하면 탄탄 대로이나 그렇지 않으면 공멸을 부른다.

그래서 처세 하기가 어렵다. 요즘 조직 생활에 들어 갔다가 튀어 나오는 사람을 흔히 볼수 있다. 어렵게 직장에 들어 갔으나 동화되지 못해 포기 하는 것이다. 왜 그럴까. 이유는 간단하다. 처세술이 부족 하기 때문이다. 남들과 사귀 면서 살아 가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데 주 원인이 있다.

그러면 처세는 어떻게 해야 하나. 여기엔 솔직히 정답이 있을 수 없다. 있다면 스스로 노력하거나 다른 사람의 경험을 본 받는 일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궁정동 시해 사건은 차지철 경호실장의 처세 잘못이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그 때문에 그에게 심하게 모욕을 당한 김재규가 대통령과 차지철을 향해 권총을 발사하는 사건을 일으키게 했다.

김재규의 말대로 대위 밖에 안 지낸 자식이 장군 출신이며 장관인 자신을 우습게 여기는 데 대해 도저히 견딜수 없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이들의 심한 갈등이 빚은 피해자다. 차지철과 김재규는 이 사건으로 둘다 몰락 했다. 여기서 우리는 많은 것을 느낀다. 박정희 대통령이 차지철을 경호 실장으로 임명한 것은 탓 할수 없으나 차지철은 그 직위를 지나치게 남용 했다.

대통령 2인자를 자처 하며 정부내 장 차관을 군화발로 걷어 차는 등 상식 이하의 처세를 했다. 그의 극단적인 처세는 두고 두고 비난 받을 일이다. 김재규의 처세 빈곤도 탓 하지 않을 수 없다. 감정을 추수르지 못한 그의 빗나간 이성도 마찬가지다.

인간 관계는 모가 아니면 도로 보는 사람도 많다. 죽이 맞으면 푹 빠졌다가도 상대가 실망스러우면 무자르듯 끊어 버린다. 조직 생활을 오래한 사람들은 한결 같이 처세의 어려움을 실토한다.

심지어 손금 닳기 정도에 따라 처세의 성공 여부를 가늠 하는 사람도 있다. 손금이 보이지 않아야 처세가 좋았다는 말이다. 구약 성경에 나오는 에스더 왕비 이야기는 위기 상황을 슬기롭게 처세한 장면이 적나라하게 나타난다. 지금으로부터 2500년전의 얘기이나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교훈적 가치가 크다.

오래전의 얘기라 자칫 신화가 아니냐고 의심 할지 모르나 실제 있었던 일이다.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투스는 당시 발견된 수산궁에 대한 고고학의 발굴과 역사 기록 비문등을 통해 사실임을 밝혀 냈다.

에스더 얘기는 페르시아 (지금의 이란) 아하수에로왕의 새 왕비로 에스더를 맞이 하면서 전개 된다. 왕은 이에 앞서 전 왕비 와스디의 아름다움을 신하들에게 보여 주기 위해 궁중 잔치를 베풀고 자신의 권위와 영광을 자랑하려했다. 그러나 와스디가 왕명을 거역하고 잔치에 불참므로써 심기가 뒤틀린 왕은 신하들의 주청을 받아 왕비를 즉시 폐위시키고 말았다.

그러자 왕은 새로운 왕비를 맞이하기 위해 전국적으로 공모제가 아닌 강제적인 방법으로 왕비 후보들을 소집 했다. 이때 나라와 부모를 잃은 유다인 소녀 ‘하닷사’도 소집 됐다. ‘하닷사’는 곱고 아리따운 처녀였으나 어려서 부모를 잃고 유다 민족이라는 신분도 숨기고 살았다. 고아나 다름없던 그녀를 길러준 사람은 사촌 ‘모르드개’였다.

‘모르드개’는 ‘하닷사’에게 과거를 숨기고 살라고 철저히 교육했다. 왕궁에 소집 되기전 이름을 ”별”을 뜻하는 에스더로 바꾸 었다. 이스라엘 사람임을 감추기 위한 것이었다. 페르시아 왕궁에 끌려간 에스더는 입궁 하자마자 왕궁의 고위 관들의 눈에 확 띄었다. 이때 강제 소집된 처녀는 1095명이었으나 왕궁의 모든 사람들은 그녀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곧바로 그에게는 궁중의 미용 영양 관리를 책임진 특별 관리팀이 배정 됐고 왕도 그녀를 총애 하게 됐다. 왕은 그녀가 얼마나 마음에 들었는지 그녀를 본후 부터는 더 이상의 다른 처녀를 거들 떠 보지 않았다. 왕은 와스디가 폐위 된지 4년만에 그녀를 새 왕후로 정식 공포하고 면류관을 씌어 주고 큰 잔치를 열었다.

이제 에스더왕비의 앞길엔 행복만이 가득 할것 같았다. 그러나 얼마 안돼 자신을 키워준 사촌 모르드개에게 큰 일이 생겼다. 당시 왕궁에는 유다 민족과 감정이 매우 안 좋은 “아각”민족 출신인 ‘하만“이 왕의 신임을 얻어 제 2인자 위치에 있었다. 왕의 신임이 너무 두터워 그는 왕궁을 출입할 때도 왕과 똑같은 예우를 받았다.

이는 왕의 특별 명령이 있었기 때문이다. 왕이 왕궁을 출입하면 모든 관리는 끓어 엎드려 절했다. ‘하만’도 바로 이런 예우를 받은 것이다. 그러나 왕궁 출입문을 지키는 관리인 '모르드개'만은 ’하만'‘에게 꿇지도 않고 절도하지 않았다.

그러자 ’하만은 분노가 하늘을 찌를 듯 치솟아 ’모르드개‘를 죽이려 했다. 그 뿐만 아니라 페르시아 전역에 흩어져 사는 그의 민족 유다인 전체를 죽일 계획까지 세웠다. 마침내 그는 왕의 재가를 얻어 특정 일자에 유다민족 모두를 학살 하라는 조서를 전국에 내렸다. 그러나 에스더 왕비는 이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는 이런 끔찍한 일이 자기 민족에게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했다. 오로지 그는 왕비가 된 행복에 겨워 나날을 보낼 뿐이었다. 그러던 에스더 왕비에게 사태의 심각성을 일깨운 사람은 사촌 ’모르드개‘ 였다.

’모르드개‘는 에스더 왕비를 찾아가 왕에게 유다민족을 구해 달라고 간청하라고 요구 했다. 하지만 에스더왕비의 대답은 지극히 소극적이었다. 당시 왕실법은 왕이 부르지도 않는 데도 왕에게 나가면 곧장 사형에 처해 지고 있었다. 다행히 왕이 면접권을 주면 살수 있었으나 그렇지 않으면 죽었다.

이때 에스더 왕비는 왕의 얼굴을 본지도 한달이 넘은 상태 였다. ’모르드개‘는 그녀의 소극적인 대답을 통해 그의 본심을 알수 이었다. 유다 민족 전체가 몰살 당해도 자신은 페르시아 왕비이므로 절대 안전해 굳이 생사가 걸린 위험한 일에 굳이 뛰어 들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심경이 복잡했으나 ’모르드게‘는 다시 에스더 왕비에게 엄중히 경고 했다. ”네가 왕궁에 있다고 해 홀로 네 목숨을 보전 하리라 생각하지 말라. 그렇게 생각 한다면 착각이다. 네가 도와 주지 않아도 유다민족은 결코 멸망하지 않는다. 하지만 민족의 위기 앞에서 자기만 살겠다고 침묵하면 너와 네 가문도 마침내는 망 할 것이다“라며 마음을 돌릴 것을 추궁 했다.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도 이때를 위한 것이 아니겠냐”고도 했다. 그러면서 또 에스더 왕비를 설득 했다. 사촌 ’모르드개‘의 잇단 경고에 정신이 번쩍든 에스더 왕비는 비장한 각오를 들어내며 ’모르드개‘에게 말했다. “나를 위해 이 도시에 있는 모든 유다인들이 3일 동안 금식 하며 기도해 달라고 ”고 요청 했다.

물론 “나 자신도 나의 시녀와 함께 3일간 금식 기도를 하겠다”고 했다. 그런후 목숨을 걸고 왕에게 나아가 겠다고 다짐했다. 죽을 운명이면 죽겠다고도 했다. 사흘째 되던 날 에스더 왕비는 목숨을 걸고 왕 앞에 나갔다. 그러자 왕은 에스더 왕비에게 의외로 특별 사면권을 허락하며 맞이 했다.

죽음의 고비를 넘긴 에스더 왕비는 당면한 문제에 성급히 달려 들지 않았다. 매우 전략적으로 접근하기 시작 했다. 우선 왕과 함께 민족의 원수 ’하만‘을 잔치 자리에 초대 했다. 잔치가 절정에 이르면서 술기운이 거나해 지자 왕은 에스더 왕비에게 소원을 물었다. 그러자 에스더 왕비는 “내일 다시 한번 ’하만‘과 함께 잔치 자리에 오시면 그때 말씀 드리 겠습니다”고 했다.

에스더 왕비의 심리전은 치밀하게 전개 되고 있었다. 왕은 ’하만‘을 전폭적으로 신뢰하고 있었으므로 ’하만‘을 무조건 비난하고 고발 했다가는 오히려 역습을 당할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에스더 왕비는 일단 왕이 자신에게 관심을 갖도록 왕의 호기심을 자극하며 애 간장을 태웠다. 이러자 왕은 에스더 왕비에게 더욱 바짝 다가 섰다.

그런 한편 에스더 왕비는 ’하만‘이 왕의 특별 대우를 받고 있다는 분위기를 조성해 심리적으로 그를 안심 시켰다. ’하만‘은 이런 에스더 왕비의 계략을 전혀 눈치 못 챘다. 그러니 ’하만‘은 어떤 대비도 할수 없었다.

에스더 왕비가 다음날 연 잔치에 왕과 ’하만‘이 또 참석 했다. 잔치가 무르 익어 가고 술기운이 오르자 왕은 이때 다시 에스더 왕비에게 소원을 말하라고 했다. 에스더 왕비는 이 때다 싶어 주저없이 바닥에 몸을 던지며 통곡하기 시작 했다.

”왕이시여 저와 저의 민족의 목숨을 제발 살려 주십시오. 어떤 사악한 놈이 저와 저의 민족 전체를 죽이려고 계획하고 있습니다“. 그렇잖아도 술기운이 올라 흥분된 상태에 있던 왕은 자신의 부인의 목숨을 노리는 불량배가 있다는 소리에 왕은 펄쩍 펄쩍 뛰었다. “도대체 어떤 놈이 감히 내 왕비의 목숨을 노린다는 것이냐”

그러자 에스더 왕비는 눈물 가득한 눈으로 ‘하만’ 쏘아 보며 “바로 저놈 입니다”라고 소리 질렀다. 갑작스럽게 공격을 받은 ‘하만’은 그 순간 온몸이 마비되어 꼼짝도 할수 없었다. 왕은 끌어 오르는 분노를 삭이기 위해 잠시 후원으로 나갔다.

그사이 '하만‘은 에스더 왕비에게 납작 엎드려 살려 달라고 빌었다. 잠시후 잔치 자리에 돌아온 왕의 눈에는 이 장면이 ’하만‘이 왕후를 강간하려는 것으로 보였다. 왕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저가 궁중내에서 왕후를 강간까지 하고자 하는가” 하고 크게 소리 쳐 댔다..

왕의 분노를 목격한 경호관들은 곧바로 ’하만‘을 체포 해 ’모르드개‘를 죽이려고 준비 했던 높이 22.5m 나무에 오히려 그를 매달아 죽였다. 재산도 모두 빼앗았다. 그의 아들 10명도 모두 죽였다. 기막힐 정도의 에스더왕비의 처세는 영화의 한 토막을 보는 것 처럼 느껴 진다. 에스더 왕비의 치밀한 처세는 참살 당할 유다민족의 위기를 구하는 절묘 함을 보였다.

차지철과 김재규가 진작 에스더 왕비의 절묘한 처세술을 알았다면 대통령까지 시해하는 비참한 사태는 일어 나지 않았을 것이다. 복잡한 사회를 사는 우리들은 에스더왕비의 처세를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다.

이럴때 사회적인 여러 갈등은 사라지고 한층 밝아질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현대를 사는 우리들은 에스더 왕비의 지혜로운 처세를 배우자. 사회는 혼자 살수 없기 때문이다. 논설위원 김명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