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규논설위원.


언젠가 친지로부터 자기아들의 혼례에 주례를 서달라는 부탁을 받고 일정에 맞춰 서울에 있는 예식장을 향해 전철을 타려고 가는 도중 으슥한 골목에서 허름한 옷차림의 청년이 불쑥 나타나더니 내 앞으로 다가서며 ‘열리셨네요.’라는 말을 건넨다.

이게 무슨 말인지? 제대로 알아듣지 못해 버럭 겁이 났다. 이친구가 혹시 가해를 하려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며 정신을 바짝 차리고 청년에게 물었다. 무엇이라 했냐고?

이날 예식장에서 해야 할 ‘주례사’를 머리에 그리며 연습을 한답시고 혼자 중얼거리고 가는지라 정확하게 알아들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 청년은 내 바지의 ‘지퍼(zipper)’자리를 가리키며 ‘작꾸가 열리셨네요.‘ 라는 어법상 어긋나는 존댓말을 하는 것이었다. 그의 말대로 아래를 내려다보니 사실이 그러했다.

아뿔사!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이 상태로 예식장까지 갔더라면 무슨 망신을 당했을까? 순간 이마에 진땀이 흐르며 한숨마자 몰아쉬게 됐다. 여기서 상대를 겉모습만보고 평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다시 한 번 터득했다.

가해를? 우려했던 그 청년이 마음씨 고운 은인이었다니, 자괴감을 금치 못하며 그에게 머리 숙여 고마움의 인사를 전하며 작별인사를 했다.

여기에서 나온 ‘작꾸’라는 단어는 우리말이 아니고 일본식 외래어 발음인 ‘작꾸( ジャック: jack)’에서 나온 말이다.

이는 헝겊오라기에 서로 이가 맞는 금속이나 플라스틱을 박아 고리를 밀고 당겨서 열고 잠글 수 있도록 만든 장치의 물건이다.

‘작꾸’라는 말은 상품명이 아니고 ‘자크(Jack)’라는 독일계 ‘지퍼’ 생산 업체의 이름인데 일본이 이를 수입하며 ‘작꾸(ジャック: jack)’라 명칭을 붙인 것이다.

영어로는 지퍼(zipper)라 하며 여기에 여닫는 장치인 파스나(fastener)기능을 첨언해 ‘지퍼 파스너(zipper fastener)라고도 부른다. 주로 의류, 가방, 지갑, 점퍼 따위의 열고 잠그는 부분에 널리 쓰인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까지 일본식 발음을 인용 사용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어느 말을 쓰던 알고는 사용해야하며 표준어가 아니면 배제하고 바른말을 선택하는 것이 수준 높은 어법이다.

‘작꾸‘에 대한 재미있는 옛 일화가 생각난다. 오래전 정계의 중견인사 K의원은 자당(自黨)의 정책을 사사건건 물고 늘어지는 상대당의 거물정치인에게 일침을 가했다.

“oo씨는 말을 못 하도록 입에다 공업용 ’작꾸‘를 채워놓아야 한다.”고 반격하여 정계를 떠들썩하게 한 적도 있었다.

‘작꾸’라는 말은 우리 생활 속에 정착 된지 오래다. 지금까지도 많은 이가 이를 고치지 못하고 사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