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용논설위원.

박근혜 정부 들어 소나기 세무 조사와 함께 재벌 총수에 대한 처벌 수위가 한층 강화돼 예전과 같지 않다는 평가다. 박근혜 대통령의 후보시절의 공약이 이제야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요즘 국세청 직원들은 기업의 세무 조사에 눈코뜰새 없이 바쁘다.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 당선후 한 중소기업 사장이 예측 한대로 기업에 대한 세무 조사가 휘몰아치고 있다. 이 중소기업 사장은 “원칙대로 하겠다”는 박 대통령의 말을 당시 세무 조사와 연결지어 해석 했었다.

그의 예상은 딱 들어맞았다. 국세청 직원들은 문제가 있어 보이는 기업에는 어김없이 세무 조사의 칼을 들이 대고 있다. 최근 회장 사퇴문제로 논란이 되고 있는 포스코에 예고 없이 조사국 세무 직원들이 들이닥쳐 회계장부를 가져갔다.

그러면서 세무 당국은 정기 세무조사라고 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돈 그룹인 효성의 조석래 회장도 비자금과 역외 탈세 문제로 곧 사법 처리될듯하다. 이명박 정부 당시 K대 인맥으로 득을 봤다는 얘기가 나돈 CJ는 지주 회사에 이어 CJ E&M도 조사 대상이다.

롯데그룹 산하의 롯데마트등도 줄줄이 세무 조사를 받았고 이밖에 많은 중소 대기업들이 조사를 받는 중이다. 국세청은 이에 대해 정치적 의도는 없다고 한사코 말한다. 그러나 재계에서는 청와대와의 이심전심 일것이라고 분석 하고 있다. 기업들이 세금을 제대로 냈다면 국세청의 세무 조사를 두려워 할 이유는 없다.

국세청의 임무는 법 규정에 따라 나라의 곳간을 채워 넣는 일이다. 이 때문에 당연한 일을 하면서도 때론 원성을 사기도 하나 탓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세무 당국에 문제는 없지 않다. 세금 잘 못 부과로 환급 현상이 최근 부쩍 늘어나고 있는 것이 그 예이다.

세무 당국의 세금 잘못 부과를 납세자가 묵인하면 그만큼 납세자는 손해를 입게된다. 올해 상반기중 국세청이 부과한 세금에 불복해 납세자가 낸 조세불복 심판 청구는 무려 2862건이나 됐다. 조세 심판원은 이중 2276건을 받아 들여 세금부과를 취소하고 조정한 인용 건수도 950건(인용률41.1%)에 달했다.

인용률은 납세자의 승소율을 의미한다. 지난해 인용률 26.4%에 비하면 이는 엄청나게 높은 것이다. 또 올해 상반기중에 세금 불복으로 법원에 낸 행정 소송 건수도 961건에 달했다. 이중 법원이 납세자의 손을 들어줘 국세청이 패소한 비율은 지난해 평균 패소율 11.7%보다 높은 12.0%나 됐다.

이는 세무 당국이 세수 부족으로 인한 빈 곳간을 매우기 위해 무리하게 세금을 거둬들인 결과이다. 그렇잖아도 원성을 사는 세무 당국의 신뢰가 크게 손상을 입은 것이다. 이와 관련해 요즘 재벌 총수에 대한 사법부의 칼날 판결이 예사롭지 않아 재벌기업이 크게 긴장하고 있다.

전과 다른 사법부의 서슬 퍼런 조치에 왕 회장들이 수난을 겪고 있다. 멘붕 상태에 까지 빠졌다는 평가다. 지금 까지 재벌 총수에 대한 사법부의 조치는 형벌 적용이 그다지 무겁지는 않았다. 무거워도 관례처럼 3년 징역에 5년 집행 유예가 고작 이었다.

그런데 최근의 판결을 보면 이런 관례가 깡그리 무너지고 있다. 전에는 재벌 총수들은 문제가 돼도 경제 발전에 기여 했고 징역을 살 경우 기업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이유로 선처를 베풀었다. 그래서 죄질이 무겁지만 집행유예 조치로 인신 구속은 피해 왔다.

우리는 TV에서도 재벌총수들이 드레스 코트를 맟춰입고 휠체어에 환자복 까지 입고 마스크를 하고 심지어 환자용 침대차를 이용해 법원에 출두 하는 모습을 봐 왔다. 재판기간 동안 종합병원의 고급 VIP 병실에 있으면서 그들은 집행 유예 판결을 받아 왔다. 그런 뒤 정권이 교체 되면 사면 판결을 받아 자유의 몸이 됐다.

이것이 지금까지의 수순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그 공식이 깨지고 있다. 사법부의 초강경 조치로 건국 이래 가장 많은 재벌총수들이 교도소에 지금 수감돼 있다. 대표적으로는 SK그룹 최태원 회장을 꼽을 수 있다. 그는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 받았으나 2심에서 형량이 줄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4년 형량을 그대로 받았다.

또 2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 받고 투옥중인 한화 그룹의 김승연 회장도 대법원에서 그대로 받을 가능성이 크다. 최태원 회장의 동생인 최재원 부회장도 1심에서는 무죄를 선고 받았으나 2심에서 3년 6월의 실형을 선고 받고 법정 구속 됐다.

형제가 나란히 감옥신세가 된 것이다. 부자지간이나 형제는 동시에 구속을 피한다는 법의 온정도 이번에는 배려하지 않았다. 특히 50대 중반의 최 회장은 사법부의 특단의 조치가 없는 경우 재벌 총수로는 가장 긴 시간을 감옥에서 보낼지도 모른다.

70대 후반의 고령인 LIG 구자원 회장 역시 3년 실형을 선고 받고 법정 구속 됐으며 아들 구본상 부회장도 이미 구속돼 아버지와 함께 감옥살이를 하고있다. 태광그룹의 이호진 회장과 그의 어머니 이선애상무도 지난 4월 구속 됐다가 건강 악화로 형집행 정지를 받아 풀려 난 바 있다.

이뿐 아니다. 탈세 혐의로 현재 재판중에 있는 이재현 CJ그룹 회장과 요사이 사회적 문제가 돼 사기등 혐의로 고발된 동양그룹 그룹의 현재현 회장도 사법 처리될 것 같다. 교도소에 수감된 재벌 총수들의 몸값을 돈으로 환산하면 100조원에 이를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감옥에 들어가 있는 재벌 총수들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중에는 내 잘못을 인정하고 자책하는 사람도 있겠으나 개중에는 밖에 있는 임원들이 로펌을 잘못 선정해 재판부를 설득 못한 탓으로 돌릴지도 모른다.

재벌이 있어야 국가 경제가 튼튼하고 수출이 잘돼 국민 생산성이 높아지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그러나 재벌 총수들이 잘못을 저질렀다면 엄격한 법의 잣대 적용은 당연하다. 물론 의도적인 총수 죽이기는 안 된다. 그동안 재벌 총수들은 사법부의 혜택에 너무 길들여져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이번 사법의 강경 조치에 그들은 놀랬을 것이다. 정말 법의 보호를 받아야 할 사람은 생계형 범죄자들이다. 생계를 위해 한때 잘못을 저지른 서민들이다. 형법 329조에 따르면 남의 물건을 훔친 단순 절도죄도 6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돼 있다.

현행법은 어린 아이를 먹이기 위해 분유를 훔친 경우에도 6년 이하의 징역을 살아야 한다. 그런데 나라에 내야 할 수천억원의 세금을 도둑질 하고 회사돈 수천억원을 자기 돈인양 가로 챘는데도 3~4년 정도의 형량이 길다고 하면 누가 법치가 바로 섰다고 하겠는가.

우리나라 최초의 법체계라 할 수 있는 고조선때의 팔조범금(八條犯禁)을 보아도 법치가 얼마나 엄격 했는지 알 수 있다. 그중 세가지만 소개하면 1조 “사람을 죽인자는 그 즉시 죽음으로 갚는다”. 2조 “사람을 상해하면 곡식으로 갚는다”. 3조 “도둑질한 자는 데려다 그 집의 종이 되고 여자는 계집종을 삼는다”로 돼있다.

이밖에도 “성역을 훼손한자는 가두어 둔다”. “예의를 잃은자는 군에 복무 시킨다” 등으로 사회 기강 확립이 아주 엄격 했다. 이처럼 나라의 근간을 갗추기 전인 고대 시대에도 남의 재산과 신체를 손상 시켰을 때는 엄벌에 처하는 강력한 처벌법이 있었다. 요즘처럼 법정신이 훼손되고 탐욕이 횡횡하며 사법부를 우습게 아는 사실을 단군 할아버지가 알고 있다면 무덤을 박차고 일어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하지만 사법부가 요즘 전과 다른 변화를 보여 크게 다행이기는 하다. 박근혜 정부의 기업 정책의 최우선은 중소기업의 육성책이다. 반면 재벌에 대해서는 상법을 개정해 개혁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재벌 총수들에 대한 엄격한 사법부의 칼날 잣대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최근 기초 연금 공약의 후퇴에서 보듯 상황 논리에 따라 기업 정책이 변할 수 있을지 모르나 현재 까지는 그런 낌새는 없다.

재벌 개혁에 따른 상법 개정을 보면 감사위원의 분리 선출과 집중 투표제 도입등으로 기업을 규제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재벌 총수의 전횡을 막겠다는 취지로 요약 된다. 그러나 재계는 이에 대해 강하게 반대 하는 입장이다.

재벌 개혁은 지금 부터라는 말이 나오지만 정부 의도대로 될지는 미지수다. 재벌 개혁이 전체 국민을 이롭게 한다면 마땅히 이뤄져야 하나 그렇지 않고 재벌 길들이기식 개혁이라면 국민으로 부터 공감은 반감 될 것이다.

복지는 누구나 좋아 한다. 하지만 복지를 위해 자기 호주머니에서 돈 나가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없다. 요즘 재계에 세무 조사등의 불똥이 튄 것도 쓸돈은 많고 징세가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또 소득세 인상이 어렵자 기업쪽으로 눈을 돌렸을 가능성도 있다.

재벌 총수들의 잇단 법정 구속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재벌 기업들은 사법부의 서슬퍼런 칼날을 탓하기에 앞서 스스로의 털을 뽑을 줄 아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논설위원 김명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