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학원안전공제회 사무국장,

법학박사 정환웅 시인

혼자라는 그 두려움의 기억
        
글/정환웅

그 해 여름 나는 절로 들어갔다.
친구들은 고시공부를 위해 학교강의는 결강하면서
하나 둘 산사로 스며 들어 갔다.

광주 근교에 있는 장성이나 담양에 있는 절들이 고시공부 장소로
알려져 있었던 때였다.

하지만 학교 강의를 빼먹을 배짱이 없었던 나는
여름 방학을 하고서야 절 집을 찾아 갔다.

그도 집을 멀리 떠나는 것이 두려워서
집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증심사 부근의 작은 절을
택하였다.

그런데 절을 잘못 택한 것이다.
좁은 공간에 절 집과 공부방이 있다 보니

낮에는 여러 사람이 들고 나는 것이 거슬렸고
불공드리는 의식 소리도 책보는 것을 방해했다.

같이 생활하는 학생들을 보니
그들은 시험공부를 하기 보다는 하숙집 정도로 생각하고
편하게들 생활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어머니를 설득하여
방학도 되고 하니 본격적으로 법서를 읽을 요량으로
절 집을 찾은 것이 아닌가?

처음 찾은 절 집에 나는 실망을 하였다.
하지만 어찌 하겠는가?

부모님께 열심히 하겠노라고 큰소리치고
찾아 온 절 집이 아니던가?
여기서 주저앉으면 내 체면이 말이 아니지...

나는 나 스스로를 달래면서 책을 보았다.

나는 낯 가림이 심한 편이다.
현실 사회와 단절된 공간에서 낯선 이들과 어울려
식사하고 생활하기가 쉽지 않았다.

밤이면 대웅전 처마 밑에서 울려대는 풍경소리는
소름끼치는 두려움으로 내 가슴을 후벼 팠다.

어두운 공간에 불을 끄고 누워있노라면
쉴새없이 울어대는 풀벌레 소리에
몸도 마음도 몹시 추웠다.

절 집에 만족하지 못한지라
나는 공부시간 확보를 많이 할 수 없었다.

몇 과목의 기말시험이 아직 남아 있는 상태여서
바로 공부 장소를 옮길 수도 없었다.

기말시험이 끝나자 나는 그 절 집을 나오고 말았다.
나의 첫번째 입산(?)은 이렇게 중도에서 좌절되고 말았다.

애초부터 나 자신에게 너무 나약하였다.
그런 주제에 무슨 고시준비를 한다고 덤벼들었담...

나 자신에 대한 실망도 컸다.
이렇게 나약한 마음으로 앞으로의 인생을 어떻게 개척해 나갈 것인가?

자신에게 강해 질 수는 없는가?
상당히 많은 인생을 소모한 지금까지
그것은 풀지 못한 숙제로 내 앞에 남아 있다.

젊은 시절 자신에게 강해 질 수 없었던 나는
두고 두고 평범한 凡夫로서의 인생을 살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소위 잘 나가는 친구들로부터의 연락은
어떤 형태로든 나에게 온다.

제발 나 혼자일 수는 없는가?
젊은 시절 혼자라는 그 두려움의 기억을 극복하지 못한 나는
이제 와서는 혼자이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자신있게 설 수 있는 그 날...
그 날은 나에게는 머언 지평선위의 아지랑이로 피어 오르고 있다.
헛된 욕심인가?
스스로에게 반문해 본다.  

[후기]
- 나를 사랑할 사람은 나밖에 없다. -

건강한 자기 애를 가진 사람에게는 고통과 시련이 곧 도전의 기회이자 스스로에 대한 시험대가 된다. 하지만 스스로를 사랑하기보다는 가련하게 여기며 자기 연민에 빠진 사람에게는 모든 고통과 시련이 견딜 수 없이 무거운 짐이 된다.

소설 [채털리부인의 사랑]으로 널리 알려진 영국의 작가 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는 詩 [자기 연민 Self Pity]에서 이렇게 읊었다.

나는 자기 연민에 빠진 들짐승을 본 적이 없다.

얼어붙은 나뭇가지에서 떨어지는 작은 새조차도

자기 존재를 동정하지 않았으리라.

들짐승들은 보금자리를 이동하는 중에도 단봇짐을 꾸리지 않는다. 새들은 등짐을 지고 날지 않는다. 맹수들은 서로 부축하지 않는다. 사람 역시 궁극적으로는 혼자다. 짐이든 힘이든, 그것은 언제나 각자의 몫이다. 나를 아끼고 존중하되, 불쌍히 여기지 않을 이유이다. 보듬어 다독이되, 딱하고 가엾게 여기며 쩔쩔매지 않을 이유이다.

감상에 빠져 허우적대기보다는 깊이 이해하여 진심으로 사랑하기로 한다. 그럴 때 '짐'은 '힘'이 된다.

(김별아 지음, 이 또한 지나가리라!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