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용 논설위원.  

  작량감경은 요즘 온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72)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는 광주지.고법에서 사기 횡령 조세포탈등 혐의로 재판을 받으면서 두 차례나 작량감경(酌量減輕)을 받아 형량이 절반으로 깍이는 큰 혜택을 입었다.

검찰은 그에게 벌금 1016억원을 구형했으나 1심 재판은 절반인 508억원으로 깍아 주었고 항소심도 1심 벌금의 절반인 254억원으로 깍아 주었다. 재판장이 봐주기가 아니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보통 사람들은 감히 엄두도 못 낼 일이다.

작량감량이란 판사가 피고인의 여러 사정을 헤아려 선고 형량을 2분의1까지 깍아 주는 제도다. 원래 이 취지는 경제 사정이 딱해 벌금을 낼 형편이 못되는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도 광주지법과 고법은 이런 법 취지를 무시하고 재벌인 허전 회장에게 적용해 벌금을 절반씩이나 깍아 주었다. 형량도 물론 깍아 주었다. 그러니 이를 어느 국민이 이해 하겠는가.

법원당국이 수백억대 재벌급 회장이 벌금을 못낼 정도로 형편이 어려운 사람으로 보았다면 정말 소도 웃을 일이다.

어쨌든간에 허재호 전 대주그룹회장(72)의 황금 노역 사건은 5일 만에 막을 내렸다. 이로써 그는 앞으로 벌금형에 대한 검찰의 강제 집행을 받게 됐다. 뒤늦은 감은 있으나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 생각된다.

법원 당국이 애초 이럴줄 몰랐다고 하면 지나친 자만심의 발로다. 국민들은 허 전 회장이 일당 5억원 짜리 황금 노역을 산다고 하자 배신감에 부글거리는 감정을 주체 하지 못 했다. 법원 당국에 온갖 험담을 퍼붓기도 했다.

인터넷에 나타난 네티즌의 댓글을 보면 이를 실감할 수 있다. 5천만 국민이 뻔히 눈뜨고 보고 있는데 소위 엘리트 집단이라는 검찰 법원 관계자들의 왜 이런 상식 이하의 일을 했을까며 의문을 나타 냈다.

이 땅에 사법 정의의 추락을 느꼈다는 사람도 있었다. 어떤 사람은 이번 사건은 허전 회장을 봐주기 위한 코미디 같다고도 했다.

사건의 발단은 허전 회장이 2008년 경기 용인시 복합단지 조성 공사를 한후 하청업자와 근로자들에게 공사 대금 22억원을 한푼도 주지 않고 도피한데서 비롯 됐다. 이로 인해 그는 하청업체업자 대표 장모씨(53) 등 피해자로 부터 사기와 횡령 혐의로 검찰에 고소 당해 조사를 받았다.

뉴질랜드로 도피한 그는 그곳에서 46억원자리 호화 주택에 살면서 건설회사를 차려 의욕적으로 경영 했다. 별장에 요트까지 사들여 현지 신문에 선장 구인 광고를 내 뽑을 정도의 호화 생활을 즐겼다.

하지만 그는 빚쟁이 였다. 금융 부채만 해도 223억원에 이른다. 신한은행 151억원, 신용보증기금 82억원등이다. 또 세금도 탈세해 그 액수는 국세 부문136억원, 지방세 24억원등이나 된다. 광주지방 국세청은 그의 재산에 대한 압류 절차를 밟았으나 현금이나 부동산으로 환수한 것은 하나도 없다.

그의 죄상이 최근 밝혀지면서 여기 저기서 숨겨둔 재산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해외로도 재산을 빼돌렸다는 의혹이 제기돼 추적중이다. 최근 감정 평가액이 260억원에 달하는 경기 광주시 오포읍 6만 6115평방미터(약 2만평)의 땅도 그가 실 소유주인인 것으로 확인 됐다.

이땅은 그가 2010년 12월 아파트 시행사인 B사 명의로 해두어 소유주 파악이 어려웠다.

광주 지검이 파악한 재산은 광주시 금남로 3가 동양저축은행 부지 846평방미터의 절반인 423평방미터(약 128평)가 유일하다. 봐주기란 인상이 짙은 대목이다.

이 땅은 현재 광주시 나주시 구례군등 15곳에 근저당에 설정되거나 압류당한 상태여서 쉽게 처분 할수도 없다. 뉴질랜드에서 그가 급거 귀국한 것은 지난 22일 밤 11시다. 귀국 하자 마자 광주로 압송돼 교도소의 노역장에 유치 됐다.

하루 노역이 5억원임을 안 그는 하루가 다 되기 1시간전에 수감돼 불과 1시간에 만에 벌금 5억원을 탕감 받았다. 다음날은 일요일이었으나 노역일로 간주돼 5억원을 또 탕감 받았다. 그 뒤에도 건강검진등으로 노역장에 투입되지 않았지만 하루치 노역 5억원을 탕감 받았다.

5일간 그가 받은 탕감액은 25억원에 이른다. 이로써 잔여 벌금액은 224억원으로 줄어 들었다. 그의 황제 노역에 대해 국민들의 분노는 하늘을 찌를 듯 했다.

대법원은 이 비난 여론이 수그러들 기미가 안 보이자 부랴 벌금의 환형유치(버금 대신 교도소에서 일하는 것)제도 개선방침을 밝히기에 이르 렀다.

대법원은 국회에서 현재 논의중인 ‘일수(日數) 벌금제’도 개선방안에 올려 놓고 검토하겠다고 했다. 그런 가운데 대검 공판 송무부(부장 강경필 검사장)가 26일 노역장에 유치된 수형자에 대해 검찰이 형 집행을 정지 할수 있다고 밝히면서 황금노역은 일단락 됐다.

허전 회장은 즉각 석방 절차를 밣고 출소 교도소를 나올때도 당국의 비호 아래 황금 출소 했다. 대기중이던 기자를 철저히 따 돌리고 교도소 뒷문을 통해 빠져 나갔다.

짧은 기간이나 그는 우리나라 최고의 일당을 받은 사람이 됐다. 지금 까지의 최고액 일당은 벌금 2340억원을 선고 받은 선박왕 권혁회장의 3억원(780일)이었다. 그가 이 기록을 경신 한셈 이다.

벌금 1100억원을 선고 받은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은 1억1천만원이었고 벌금 400억원의 선고를 받은 손길승 SK명예회장과 CJ그룹 이재현 회장의 각각 1억원 이었다.

허 전회장의 일당 5억원은 벌금 249억원에 대한 50일간의 노역이다. 법원이 이렇게 정한 것은 도시일용근로자의 하루 법정 임금 50000원을 기준한 한 것이다. 5억원은 일당 50000원인 도시 근로자가 한푼도 쓰지 않고 27년을 모아야 하는 큰 돈이다.

그런데도 이 돈을 하루 일당으로 쳤으니 국민들의 분노가 치민 것은 당연하다. 이는 법구조가 잘못돼 있기 때문이기도 하나 운영의 잘못도 없지 않다.

법적 노역 기간이 3년이므로 이 기간을 유효 적절히 배분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를 무시하고 벌금액 249억원에 대한 하루 노역을 5억원으로 정했으니 비난 받아 마땅하다.

이번 사건은 벌금을 대체할 하루 일당을 법관 재량에 맡겨두므로써 벌어진 일이다. 현행 형법의 총액 벌금제는 벌금액을 정한뒤 만약 내지 못할 경우 노역장에 유치해 하루 일정액을 감경 하도록 한 규정을 최대로 활용 한 것이다.

허 전회장은 법관의 이같은 재량에 따라 50일간 하루 일당 5억원이 정해 졌다. 그의 귀국은 뉴질랜드에서 도박하는 장면이 언론 카메라에 취재 되면서 비난 여론이 악화되자 국세청과 법원 검찰의 설득으로 귀국한것으로 알려 졌다. 역시 석연치 않은 구석이다.

검찰은 앞으로 허 전회장의 은닉 재산을 찾는데 집중할 방침이다. 검찰은 대주그룹이 2010년 부도가 나기 직전 아파트 건설을 위해 매입한 부동산들이 시행사 7곳을 통해 전국 40여곳에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상태다.

해외에 은닉해둔 재산도 많을 것으로 보고 해당국과 수사공조를 통해 밝혀낼 방침이다. 그가 4년간 뉴질랜드에 체류하면서 건설사업을 위해 매입한 400억원상당의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는 사실도 밝혀 졌다. 고급 별장과 호화 요트도 소유 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 됐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29만원밖에 없다며 추징금을 못 내겠다고 버티던 것처럼 그도 빚독촉을 받으면 낼 돈이 없다며 오리발을 내밀밀곤 했다. 성화가 빗발치면 부동산을 처분해 갚겠다고 입 버릇 처럼 말했다.

어쩌면 전두환 전 대통령의 모습과 닮았는지 모르겠다.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한 추징금은 검찰이 뒤늦게 그의 숨겨진 찾아내 수천억원을 받아 냈으나 국회는 이를 위해 소위 전두환법을 만들기도 했다.

이제는 허재호법을 만들 차례가 아닌지 모를 판이다. 최근 통합진보당의 이상규의원은 노역 일당을 벌금 최소액 50000원의 10배를 초과하지 못하도록 하는 일명 허재호법을 발의해 주목을 끌고 있다.

환형유치로 특혜를 없애겠다는 점에서 일수(日數) 벌금제와 비슷하나 대법원도 이를 적극 검토 할 뜻을 비치고 있다. 허 전 회장에게 일당 5억원을 정한 항소심 장병우 재판장(광주지법원장)은 광주 전남 지역에서 29년간 법관 생활을 해온 향판 (鄕判 지역 법관)으로 널리 알려진 법조인이다.

향판은 토착 세력과 유착될 가능성이 크다. 2011년 선재성 부장 판사 파문과 올해 2월 서남대 설립자 보석 허가 파문은 향판이 빚은 폐해의 사례였다. 향판 제도는 노무현 전 대통령 정부때 공식화 했으나 이젠 공정한 재판을 위해 이 제도는 개선해야 할 때라고 입을 모우고 있다.

장단점도 없지 않으나 그래야 공정하고 합리적인 판결을 기대 할수 있다는게 대체적인 의견이다. 허 전회장의 아버지(허진명 1998년 작고)는 광주지법 순천지원장 ,목포지원장을 지냈으며 사위는 현 광주지법 판사이며 매제는 광주지검 차장검사를 지내 그의 일가는 법조계 집안으로 불린다.

허 전회장의 동생 역시 전현직 판사들의 골프모임인 ‘법구회’의 후원회 일을 하다 지난해 취업사기 혐의로 1심에서 법정 구속 됐다가 항소심에서 8일만에 보석으로 풀려 난일이 있다.

우리는 얼마전 마지막 집세 70만원을 남겨두고 자살한 세모녀를 기억하고 있다. 세모녀는 자살 하기전 유서에서 ‘죄송합니다’ 라는 말을 했다. 허전 회장이 이 세모녀처럼 언제 국민들에게 ‘죄송합니다’란 말을 할수 있을는지 모르겠다.

허 전 회장 사건은 자칫 사법정의가 무너질뻔한 찰라에서 수습 됐다는 점에서 그나마 다행스럽다. 사법 파동등 문제가 발생하면 그때서야 부랴부랴 해결책을 내놓는 법원 당국의 구태는 언제쯤이면 불식될 수 있을까.

언론의 뭇매를 맞고 난뒤에 정신 차리는 그 모습을 보노라면 안 쓰럽기도 하다. 선진 법치 국가를 외치기에 앞서 자체 정화가 무엇보다 필요함을 이번 사건은 입증해 주고 있다.

논설 실장 김명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