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거 논설위원


한 물에서 오리와 백조가 섞여 노니는 모습을 볼 때마다 오리는 목이 너무 짧아 불편할 것 같고, 백조는 목이 너무 길어 불편할 것처럼 보였다. 그렇다고 오리는 자기의 목을 늘려 주기를 바라지 않을 것이고, 백조 역시 자기의 목을 줄여 주기를 바라지 않을 게 분명하다. 어느 것이나 모두들 생긴 그대로 살아야 사는 일이 편하고 자유롭다. 이렇게 편하고 자유로운 삶을 자연이라고 한다.

  그러나 온갖 것 중에서 오직 사람만이 생겨난 그대로 살기를 거부하고 또한 그렇게 해야 사람의 값을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사람이 사는 일은 오리나 백조가 누리는 삶보다 어리석기 쉽다. 자연을 어기고 엇나게 사는 것은 결국 뒤끝이 험한 까닭이다.

  사람의 삶이 고통스러운 것은 주어진 대로의 삶을 거부해야 하는 성질머리 탓이다. 삶을 어렵게 이고 지고 가야 하려는 데서 인생은 고(苦)다. 고(苦)는 아프고 괴롭고 쓰다. 인생을 그렇게 몰아가는 인간이 무서운 줄을 우리 모두 어느 날에나 깨우칠까?

  그러나 사람의 삶이 고(苦)일지라도 슬퍼할 것은 없다. 만물은 모두 다 제 나름대로 사는 것을 만족해한다. 자연의 요구에 따르는 성질을 사람만 저어하는 형편이지만 인간은 나름대로 인생을 설계해서 성취할 수 있는 마음을 부리므로 괴롭다고 걱정할 것은 없다.

  오로지 사람만 자연에 거부하면서 제 뜻대로 살려고 땅을 파서 논밭을 일구고 나무를 베어 집을 짓고 깊은 땅 속을 파고 들어가 온갖 자원을 뽑아다 온갖 물건을 만들어 잘 살아야 한다고 사람은 밤낮으로 다짐한다. 이러한 다짐으로써 인간은 문화의 주인이 된다. 이처럼 인간은 뜻에 따라 살아보려고 하므로 인생이 고(苦)일지라도 두려워할 것은 없다.

  문화의 편에서 보면 사람은 분명 자연의 동물이 아닌 게 분명하다. 사람이란 분명 문화의 동물인 모양이다. 여기서 사람의 삶이 고(苦)인 것은 결국 그 삶이란 것이 문화의 재주로 매겨져 있다는 비밀을 헤아려보고 짚어보게 된다. 사람에게 삶을 자신의 뜻대로 살아야 한다는 욕망이 없다면 문화는 생겨나지 않았을 게 아닌가.

  삶을 성취하라. 이것이 모든 현대인들의 불문율(不問律)이다. 이런 불문율이 사람의 삶을 괴롭게 하고 즐겁게도 한다. 그래서 사람의 삶이 고(苦)라고 질러 놓았지만, 사람은 그 고(苦)를 항상 눈물로 애닲어만 하는 것은 아니다. 행복하므로 즐겁고 불행하므로 슬프다는 두 갈래의 얼굴을 버릴 수 없으므로 사람의 삶이 고(苦 )인 것이지 항상 괴로움만 있어서 고(苦)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무엇이든 지나치면 탈이 나는 법이다. 사람의 삶이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지나쳐 무서워질 뿐이다.

  삶을 성취하자는 불문율이 너무나 지나쳐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착각들이 태풍을 만난 바다의 너울처럼 세상을 뒤엎으려 한다. 삶의 지나침은 그 푼수를 넘어선 지 이미 오래여서 인간의 마음속에는 이미 해일이 몰아쳐 삶의 뜨락을 할퀴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지금 우리들은 무서울 병을 앓으면서 신음하고 아파한다.

  인간은 이렇게 무서운 병이 왜 생겼는지 안다. 인간 탓으로 생긴 병이지 천지 때문에 생긴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삶이 괴롭다고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잘못되고 있는 내 마음을 참으로 두려워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