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학원평생교육시설안전공제회 사무국장

정 환 웅 (시인, 법학박사)
능소화

정환웅 詩

그리움의 눈물이 넘쳐

꽃이 되었어요.

  고운님 발자국 소리 들릴까

꽃잎 크게 벌려 귀 기울였어요.

  보고픈 님 그림자라도 보려고

까치발로 담장 너머 봅니다.

  새들은 꽃을 찾아드는데

무심한 님은 안타까운 서성임만 주시네요.

  기다림은 죽음을 넘어

꽃이 되었어요.

  2015. 06.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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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능소화 이야기

  이 꽃을 ‘구중궁궐의 꽃’이라고 칭하기도 하는데,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옛날 옛날 복숭아 빛 같은 뺨에 자태가 고운

'소화’라는 어여쁜 궁녀가 있었습니다.

임금의 눈에 띄어 하룻밤 사이에 빈이 되었답니다.

궁궐에 빈의 처소가 마련되었지만

어찌된 일인지 임금은 그 이후로는

빈의 처소를 한 번도 찾지 않았습니다.

빈이 여우같은 심성을 가졌더라면 온갖 방법을 다해

임금을 처소로 불러들였을 테지만

그녀는 그렇지 못했나 봅니다.

다른 빈들의 시샘과 음모로 그녀는 밀리고 밀려

궁궐의 가장 깊은 곳에 기거하게 된 빈은

그런 음모도 모르는 채 마냥 임금님이

찾아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혹시나 임금이 자기 처소에 가까이 오셨다

돌아가시지는 않았나 싶어

담장을 서성이며 기다리기도 하고,

발자국 소리라도 나지 않을까, 그림자라도 비치지 않을까

담장 너머를 쳐다보며 안타까이 기다리는 동안

무심한 세월만 흘러갔습니다.

어느 여름날 기다림에 지친 이 불행한 여인은

병이 나서 세상을 뜨게 되었습니다.

권세를 누렸던 빈이었다면 초상도 거창했겠지만

잊혀진 구중궁궐의 한 여인은 초상조차도 치루지 않은 채

'담장 가에 묻혀 내일이라도 오실 임금님을 기다리겠노라' 한

그녀의 유언대로 시녀들은 그녀를 담장 밑에 묻었습니다.

더운 여름이 시작되고 온갖 새들이 꽃을 찾아 모여들 때

빈의 처소 담장에는 마침내

조금이라도 더 멀리 밖을 보려고 높게

발자국 소리를 들으려고 꽃잎을 넓게 벌린 꽃이 피었으니

그것이 바로 능소화 라고 합니다.